[문화 읽기] 윤여정, 아카데미를 접수할까

입력 : 2021-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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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포스터.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미나리>는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미국 아칸소 외지의 농장에 정착해 고군분투하는 사연이다. 윤여정은 딸 모니카(한예리)와 사위 제이콥(스티븐 연)의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 순자 역을 맡았다. 그는 손주라면 껌뻑 죽는 전형적인 할머니이면서, TV로 레슬링을 시청하며 즐거워하는 반전의 면모까지 갖췄다. 여기에다 갑자기 찾아온 병세에 신음하는 혼신의 연기까지 펼치며 그야말로 모든 걸 작품에 쏟아부었다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작품 속 순자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접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정착’은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할리우드 서부극의 중요한 주제였다.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가 농장을 일궈 삶의 터전을 마련하려는 것처럼 서부극 속 가족 또한 불모지의 땅에 도시를 건설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 했다. 다만 극 중 남자가 외부 세력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동안 여자는 집안일에 온 정성을 쏟는 순종적인 역할에 그쳤다.

이와 달리 순자는 자신만의 오락을 즐기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등 진취적인 현대 여성상(像)으로 관객의 시선을 끈다. 서부극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한국인 가족이 등장해 미나리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농장을 일구는 풍경이 미국 관객에게는 새롭게 다가갔을 터. 순자는 제이콥과 함께 <미나리>의 상징적인 인물로 주목받았는데 이제 관심은 출연 배우의 수상 가능성으로 모인다.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각본상·음악상 등 <미나리>는 모두 6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특히 윤여정의 여우조연부문 수상 여부에 관심이 가는 건 그가 각종 영화·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한국인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왔기 때문이다.

윤여정과 같이 후보에 오른 배우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전력이 있는 올리비아 콜맨과 글렌 클로스, 그리고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의 마리아 바칼로바가 그들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과 윤여정의 2파전을 예측한다. 4월25일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을 기대해도 될 법한 이유다.

아카데미의 본상 수상은 작품의 완성도와 뛰어난 연기 외에도 +α(플러스 알파)가 작용하는 사례가 있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탄 것은 주로 미국 백인에게 한정된 후보 지명과 수상의 폭을 다양하게 넓혀보자는 세계 영화계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비영어권 영화를 향한 역사상 유례 없는 아카데미의 호의는 변화의 의지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연기상에서는 단 한명의 흑인 배우를 제외하면 모두 백인 일색이라 더 다양한 인종에 문호를 넓혀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확실히 올해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른 배우의 다양한 국적과 인종을 고려하면 이색적이라는 느낌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벌어진 이변(?)을 올해 연기상에서도 기대해도 될 것 같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외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윤여정이 <미나리>에서 보여준 연기는 오랫동안 회자할 만하다. 그래서 더욱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을 점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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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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