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지역성으로 지역성 넘은 수풍석미술관

입력 : 2021-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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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풍석미술관 내외부.

이타미 준(1937∼2011년)은 재일교포 2세 건축가다. 본명은 ‘유동룡’이고 ‘이타미 준’은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지은 예명이다. ‘이타미’는 그가 처음 한국에 갈 때 이용했던 일본 공항 이름이고, ‘준’은 의형제로 지냈던 작곡가 길옥윤의 윤을 일본어로 발음한 것이다. 평생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으로 살았던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는 경계인이었다. 일본에서 건축교육을 받았지만 취업은 힘들었고, 건축사무소를 열어도 일거리는 좀처럼 없었다. 치열한 노력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일본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을 때, 성큼 다가온 한국 건축계에서 그는 또다시 이방인임을 절감했다.

정체성에 대한 사유와 구도자에 가까운 단련 때문일까. 그의 건축은 현란한 형태와 신소재에 탐닉하는 현대건축과 거리가 멀다. 흙·돌·나무·철 등 원초적인 재료의 물성을 거칠게 드러낸다. 형태와 공간은 지역의 자연과 문화에 바탕을 뒀다. 그는 말년 즈음 제주에서 포도호텔, 수(水)풍(風)석(石)미술관, 두손미술관, 방주교회 등을 설계하면서 건축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그중에서도 유한한 건물로 무한한 자연을 전시하는 수풍석미술관은 일반적인 미술관 개념을 초월한 압권이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수미술관은 동그란 우주선처럼 생겼다. 뻥 뚫린 지붕 위로 제주의 하늘과 구름이 떠 있고, 바닥은 커다란 수반처럼 물이 고여 있다. 맑은 날이면 물 위에 하늘과 구름이 비치고, 바람이 불면 잔물결이 일렁이고, 비가 오면 물이 음악처럼 튄다. 야트막한 언덕에 지은 풍미술관은 바람이 들고나기 쉽게 얇은 나무판을 빗살 모양으로 이어 붙였다. 빗살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대조는 시시각각 변하고, 나무판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는 제주식 전원교향곡이다. 부식된 철판을 연상시키는 석미술관 앞에는 손 모양의 돌조각과 멀리 보이는 산방산이 극적인 대비를 연출한다. 외벽과 지붕이 만나는 모서리에 돌출된 둥근 천창은 캄캄한 실내에서 보면 하트 모양이다. 그곳으로 들어온 햇빛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다른 모양의 빛과 그림자를 바닥에 그린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안에 놓인 매끈한 돌 하나다.

세 건물 모두 형태는 지극히 단순한데 제주의 물·바람·돌과 풍경을 담은 공간은 깊고 변화무쌍하다. 겉으로는 무덤덤하지만 속으로는 폭풍의 인생을 견디며 도를 이룬 장인의 모습을 닮았다. 군더더기를 잘라내고 본질만 오롯이 남겨 놓은 듯하다. 심지어 절대고독·승화·본질·근원·우주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그래선지 그곳을 찾은 사람들은 명상과 치유를 이야기한다. 아마도 경계인 이타미 준은 건축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그 경계를 지워버린 모양이다. 그는 2011년에 세상을 떠났다. 유해 절반은 아버지의 고향인 경남 거창에, 절반은 그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던 제주 바다에 뿌려졌다.
 


김소연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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