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장욱진의 단순한 삶

입력 : 2021-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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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동산’ 1978, 캔버스에 유채 33.4X24.2㎝, 현대화랑 제공

장욱진(1917∼1990년)의 그림에는 동심으로 가득한 시골 동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나무·마을·새·집 그리고 강아지와 송아지 등 그림 속 소재는 순진무구해 보인다. 어린아이가 도화지에 그린 것처럼 캔버스도 10호 안팎으로 자그맣고, 선과 색의 기법도 단순 그 자체다. 그의 그림 속에는 복잡하게 꼬이거나 골치 아픈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충남 연기에서 태어난 장욱진은 소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고등학교 때까지 전국의 학생 미술상을 휩쓸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도쿄의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해방 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거쳐 서울대학교 미대 교수로 일했는데, 도시에서의 그리 길지 않은 봉직생활을 제외하고는 한평생을 줄곧 한적한 시골에서 작업에 전념했다.

그의 그림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그림을 그린 사람 자체가 투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 자신도 “나는 심플(단순)하다. 겸손도 싫고, 격식도 싫다”고 종종 말했다. 그는 오래 생각하기를 싫어했고, 직장생활도 도시생활에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결국 1960년에 교수직을 관두고 오직 그림에만 몰두하기로 한다.

그의 그림 속에는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등장하는데, 이는 실제로 지극히 단조로웠던 그의 일상용품에서 영향을 받은 탓이다. 넥타이·양복과 같은 의복에도 큰 관심이 없을 정도로 소탈한 그였기에 웃지 못할 일화도 많았다. 어느 날엔 제자의 요청으로 고향 모교에서 그를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학교 수위가 귀빈 영접용으로 마련한 새 실내화를 놔두고 헌것을 내주었다고 한다. 설마 그토록 허름한 남성이 그날의 주인공인 장욱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기 남양주 와부읍 덕소리에서 머물던 시절에 남긴 작가노트 ‘강가의 아틀리에’에서 그는 자연의 아들임을 고백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서 다 써버릴 작정이다. 저 멀리 노을이 지고 머지않아 달이 뜰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의 쓸쓸함을 적막한 자연과 누릴 수 있게 마련해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그는 살면서 뭐라도 남기려 애쓰거나 쌓아두지 않아도 자연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인생을 채울 수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인간은 다 소모하는 존재지만, 자연은 그렇게 고갈된 인간을 충전시켜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 말이다.

자신의 직관을 믿었던 자연의 아들 장욱진은 꾸밈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에너지를 모두 바쳐 그림을 그리다가 삶을 마감했다. 2021년 새해, ‘단순하게 살자!’는 결심이 선 분이라면 그의 작품 <동산>을 감상해볼 것을 추천한다. 인생의 진리는 언제나 가장 단순한 것에 있다. 마침 서울 종로구 현대화랑에서는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집·가족·자연 그리고 장욱진’이 2월28일까지 열린다. 온라인 사전예약을 통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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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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