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달콤한 유혹, 커피 칸타타

입력 : 2021-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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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은 매일 아침 정확히 60개의 원두를 세어 잔에 넣고 커피를 마셨다고 합니다. 전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하루에 커피 3ℓ를,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매일 50잔의 커피를 마셨고요.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라는 터키의 속담이 있는데요. 예술가들에게는 이 검은 액체가 많은 영감을 줬나 봅니다.

제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공부할 때, 저도 그곳 사람들처럼 하루에 네다섯잔 이상의 커피를 마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에 우유를 섞은 카푸치노(Cappuccino, 우유 거품이 올려진 모습이 카푸친 수도회 수도사들이 쓰고 다니는 하얀 터번과 비슷해 유래했다는 설이 있음)에 달콤한 과자를 몇개 찍어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나 교수님과 서서 빠르게 마실 수 있는 에스프레소(Espresso)를 즐겼습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커피에 얼음 알갱이와 설탕을 넣은 카페 샤케라토(Caffe Shakerato, 샤케라토는 ‘흔들다’라는 뜻)로 열기를 식히곤 했습니다.

1500원 정도면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으니 한국에 비하면 이탈리아는 커피값이 굉장히 저렴합니다. 가끔 주머니가 가벼운 유학생이 예술적 영감을 받고 싶을 때는 커피값이 꽤 나가는 ‘카페 그레코(Caffe Greco)’에 갔습니다. 이곳은 1760년에 문을 열어 괴테·리스트·쇼펜하우어·멘델스존과 같이 저명한 예술가가 다녀간 2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입니다.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천천히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커피와 함께 나온 물 한모금으로 입을 헹군 후 작은 커피 초콜릿을 먹었습니다. 나의 의식과 감정이 깨어나는 작지만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활동하던 18세기 독일 라이프치히에서도 커피를 마시는 것이 대유행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을 ‘커피 하우스’라고 불렀는데, 바흐는 이곳에서 공연을 할 목적으로 ‘커피 칸타타 BWV 211’을 작곡했습니다. 칸타타는 ‘노래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독창·중창·합창 그리고 규모가 작은 오케스트라로 이루어지는 성악곡의 형식입니다. 주로 종교적인 칸타타를 작곡했던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답게 세속적인 칸타타에서도 생동감 있는 선율과 색채감 있는 반주로 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딸과 “제발 커피를 그만 마시라”고 설득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딸의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는 커피가 얼마나 달콤한지 “천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머스카텔 와인보다도 부드럽다”고 예찬합니다. 어떤 것에 푹 빠져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는 젊은 딸을 둔 아버지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봅니다.

우리나라에도 커피를 마시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지라 이제는 식당보다 커피 전문점을 찾는 게 더 쉬운 일이 되었는데요. 나이·직업·성별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커피를 찾습니다. 맛과 향이 좋은 커피를 즐기는 것도 있지만, 커피 애호가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바쁘고 지친 삶에 작은 쉼을 주기 때문이겠죠.

전염병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요즘, 평범했던 일상이 더욱 그립습니다. 차디찬 겨울, 바흐의 ‘커피 칸타타’를 들으며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기연 (이기연오페라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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