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12월에는 헨델의 ‘메시아’를 들어요

입력 : 2020-12-14 00:00 수정 : 2021-01-2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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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다니던 피아노학원의 원장님 방에는 큰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얼핏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되지 않는 사람이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하고 나를 쳐다보는데 눈빛이 아주 예리했습니다. 언니에게 물어보니, 음악의 어머니인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라고 했습니다. 일곱살 꼬마는 “모든 작곡가를 낳아 키운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헨델이 여자가 아니라는 것은 알게 됐지만, 지금도 간혹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부부인 줄 아는 사람을 보면 어릴 적 기억이 나서 웃음이 납니다. 영화 <파리넬리>를 기억하시나요? 카스트라토(거세를 통해 여성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남자) 파리넬리의 일생을 그린 영화인데, 헨델이 그의 노래에 감동해 가발을 벗어 던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머리였던 헨델은 늘 비싼 가발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1685년 독일의 작은 마을 할레에서 태어난 헨델은 바흐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입니다. 두사람은 같은 해에 독일에서 태어났는데 평생 만난 적은 없다고 합니다. 자녀를 여럿 낳고 고국에서만 활동했던 바흐와 달리,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헨델은 독신으로 이탈리아·영국 등 유럽을 누비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습니다.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다가 음악가의 길로 접어든 헨델은 함부르크 오페라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와 하노버의 궁정악장을 지냈습니다. 휴가차 런던에 갔다가 공연문화가 발달한 그곳에 매료돼 영국으로 귀화해 50여년을 살며 무수한 작품을 쏟아냅니다. 런던의 왕실악장이 되고 왕립음악아카데미의 총책임자로 왕과 귀족을 위한 오페라를 작곡하며 오페라극장까지 운영하게 됩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헨델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됩니다. 온천요법으로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지만 계속되는 건강 악화, 가수들과의 마찰, 재정의 어려움마저 더해져 매우 힘든 시기를 겪게 됩니다.

성공의 비결은 절실함이라고 했던가요? 오페라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헨델은 이때 제작비를 최대한 줄이고 최대의 효과를 낼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페라와 비슷하지만 연기·의상·무대장치를 빼고 진행되는 오라토리오(종교적 주제에 의한 성악 음악극)를 작곡하게 되죠. 그것이 바로 ‘메시아(Messiah)’입니다. 예언과 탄생, 수난과 속죄,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내용으로 영국의 시인 찰스 제넨스가 쓴 대본에, 절망 속에 떠오른 영감으로 헨델은 연주 시간만 2시간이 넘는 대작을 24일 만에 작곡합니다. 더블린에서 메시아가 초연될 때 음악회에 참석한 조지 2세가 ‘할렐루야 코러스’ 부분에서 너무 감동해 기립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관습에 따라 관객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으니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당황하지 말고 함께해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2월이 되면 많은 공연장에서 헨델의 메시아가 연주됩니다. 음악회 포스터를 보면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 메시아’라는 홍보문구가 자주 들어가는데요. 헨델은 매년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불우한 고아들을 위해 메시아를 연주했습니다. 녹내장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지만 계속해서 자선음악회를 열어 수익금으로 보육원을 돕고, 그들을 위해 유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땅의 모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처럼 헨델은 이토록 위대한 사랑의 음악을 선물로 줬습니다. 차가운 겨울,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 전해주는 따뜻한 위로의 선율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이기연 (이기연오페라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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