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미국 앨라배마주 시골에 핀 희망

입력 : 2020-12-07 00:00 수정 : 2021-01-2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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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 클럽하우스 건물과 농구 코트. 사진출처=루럴 스튜디오 홈페이지

새뮤얼 막비(Samuel Mockbee)는 미국 앨라배마주 오번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였다. 1993년, 그는 ‘루럴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헤일지역에서 학생들과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여느 건축가라면 그곳에서 과연 무슨 건축을 할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을 법한 별난 도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헤일지역은 과거 흑인 노예의 고장이었던 남부 앨라배마주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했다. 주민 대부분은 흑인 빈민층이었다. 수도도 난방장치도 없는 판잣집과 낡은 이동주택이 듬성듬성 있고, 야생동물이 수시로 드나들 정도로 개발과 거리가 먼 환경이었다.

그런 곳에서 새뮤얼은 왜 작업실 이름마저 ‘시골’을 뜻하는 ‘루럴’로 짓고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새뮤얼은 건축이 환경·사회·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생각하는 훌륭한 건축가는 위대함보다는 선량함, 정열보다는 연민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학교 설계실에 갇힌 종이 위의 건축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도덕적 감성과 책임감을 가르치고 싶었다. 가난한 이웃에게 무료로 집을 지어주기 위하여 후원자와 협력자를 발굴하는 것도 사회적 연대감을 높이는 일이었다.

루럴 스튜디오가 생긴 후 학생들은 주민들과 상의해 실제로 지을 건물을 설계하고 직접 시공했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를 위한 건축이 무엇인지, 어떻게 경제적이면서도 기발한 재료로 좋은 디자인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스스로 탐구하는 훈련을 쌓았다. 예를 들면 폴리우레탄으로 감싼 마른풀 블록을 고단열재로, 자동차 번호판 뒷면을 벽면 마감재로 사용했다. 버려진 폐타이어는 내부를 흙으로 채우고 강화철근을 삽입하고 금속망사를 씌운 후 벽토로 마감해 외벽을 만들었다. 버려진 건자재를 재활용하고 남부의 지역성을 살린 디자인으로 저예산 주택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센터·야구장·교회·청소년센터·어린이센터·농산물시장 등을 지었다.

2001년 새뮤얼이 57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동료와 제자들은 현재까지 2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1000명 이상의 시민건축가를 교육했다.

지역주민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안전한 보금자리가 생기자 가난 때문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 살게 됐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차별과 소외 때문에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새로운 의욕을 갖게 됐다. 건축이 환경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새뮤얼의 신념은 입증된 셈이다.

무엇을 지을까가 아니라 무엇을 지어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하는 루럴 스튜디오, 어쩌면 그들이 짓는 것은 희망과 정의가 아닐까.

김소연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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