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이 문장] ‘무서록(無序錄)’

입력 : 2021-10-13 00:00

01010101801.20211013.900033711.05.jpg

책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60쪽)

상허 이태준은 한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문장가이며 한국 단편문학을 완성한 작가이기도 하다. 1930년대 정지용의 시와 함께 이태준의 산문은 당대를 주름잡았다. 순서가 없다는 뜻인 <무서록(無序錄)(범우사)>은 그 형식이 수필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내용은 한꼭지 한꼭지가 마치 한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다른 꼭지도 마찬가지지만 ‘책’은 불과 3쪽에 지나지 않는 짧은 분량이면서 책에 대한 찬사와 사랑을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글이 또 있을지 의문이 들게까지 한다.

책을 단지 읽기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이며 책이란 모름지기 읽고, 보고, 어루만지는 것이라는 상허의 생각에 지극히 공감한다. 상허가 ‘책’보다 ‘冊’을 더 좋아한 것은 아름다운 책의 모양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상허처럼 책을 우선 소유하고 보는 급진파로서 책을 사서 첫 쪽을 읽어보는 맛을 좋아한다. 상허가 책을 사서 전차에 오르면 전찻길이 멀수록 복되다고 여긴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기다릴 때 재미난 책을 읽고 있으면 은근히 그 사람이 늦게 오기를 기대한다.

<무서록>은 얇아서 한손에 쥐고 누워서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좋아하는 상허의 철학처럼 작은 책이다. 좋은 벽면을 가진 방이 탐난다는 한줄을 읽다가 여운에 빠져 팔이 아프도록 쥐고 있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박균호 (북칼럼니스트·교사)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