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최악의 노래로 사람을 사로잡다

입력 : 2020-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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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지겹게도 음악을 들었다. 요즘은 마음대로 공연장을 찾지 못하고 사람들도 만날 수 없다보니, 방에 처박혀 평소 듣지 않았던 CD와 LP까지 꺼내 한풀이하듯 음악을 듣는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 덕분에 삶이 풍요로워졌다. 예전엔 음악을 듣는 일이 이토록 쓸모 있을 줄 몰랐다.

평소 전혀 들을 일 없는 음반을 무심코 골랐다. 세상에서 제일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 남긴 음반으로, 벌써 두세대 전의 미국 여인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가 그 주인공이다. 이 음반에 담긴 노래를 듣는 건 괴롭고 힘든 일이다. 노래를 너무 못하기 때문이다. 수록된 어느 곡을 들어도 다르지 않다. 음정과 박자가 맞지 않는 노래는 비명 같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낑낑대는 느낌마저 든다.

날고 기는 소프라노 가수들도 힘들어한다는 난곡(難曲)인 모차르트의 ‘밤의 여왕’ 아리아도 불렀다. 듣는 이를 괴롭히려고 고음 처리가 어려운 곡만 일부러 골랐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질환이 있거나 굉장한 자신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목청 높여 열심히 부르지만 듣는 이의 괴로움은 줄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끝까지 부른다. 남이야 어떻게 듣든 태연하게 부르는 그녀의 능청스러움은 놀랍고도 웃기다.

진저리 치면서 듣게 되는 이런 노래를 애청곡으로 삼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이런 노래가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젱킨스가 말도 안되는 실력으로 어려운 곡만 골라 지치지도 않고 노래했던 배경이 사람들은 궁금했을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2016년엔 젱킨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플로렌스>가 나왔다. 명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젱킨스 역을 맡았다. 영화뿐 아니라 음반도 재발매됐고, 유튜브에도 젱킨스와 관련된 콘텐츠가 많이 올라와 있다. 괴로운 노래를 일부러 듣는 엽기 팬들과 흥밋거리를 좇는 누리꾼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젱킨스는 부유한 사업가의 부인으로 음악을 사랑했다. 그는 자신의 노래가 완벽한 수준이라 확신했다. 여기에 사업가 남편의 외조까지 더해지자 젱킨스는 급기야 카네기홀에 서게 된다. 카네기홀이 어떤 곳인가. 음악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그곳에서 인정과 환호, 갈채를 이끌어내고 싶어할 곳이다. 젱킨스는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절창(?)을 선보였다.

젱킨스는 자신과 자신의 노래를 너무 사랑했다. 앓았던 병의 합병증으로 제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설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정말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플로렌스>에서 객석의 청중은 엉망인 노래를 들으며 처음엔 비웃고 야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젱킨스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노래하는 자신의 모습과 음악의 아름다움이 삶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꿋꿋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그러자 마침내 청중의 비웃음과 야유가 웃음과 박수로 바뀌었다. 이 모습을 본 젱킨스는 노래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녀는 이후 계속 무대를 이어갔고,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은 공연으로 젱킨스를 꼽는 믿지 못할 일마저 벌어졌다.

사람들은 최고의 기량으로 펼치는 노래에만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에 대한 젱킨스의 태도와 그녀 앞에 쏟아진 박수갈채를 잊어선 안된다. 때론 믿음과 진중한 태도가 기적을 만든다. 진심의 미덕을 보여주는 젱킨스의 일대기는 신화가 아니다.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다.

윤광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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