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개입의 역설

입력 : 2018-03-14 00:00 수정 : 2018-03-14 09:16

정부, 경쟁력 강화 위해 많은 재정·인재 투입했지만 ‘저성장 고착화’ 부작용만 초래

실제 사업 추진 여부 기업가 재량인 것 잊지 말아야
 


세상에는 역설이 있다. 잘하기 위한 선의에서 일을 하더라도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손에 넣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예를 들어 고등교육기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재정 지원을 늘리고 개입 강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전혀 딴판의 결과가 나온다. 오히려 경쟁력이 뒤처지는 결과를 낳는다.

사기업 세계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한분이 대학의 총장을 맡은 다음에 털어놓은 이야기가 이렇다. “무엇 하나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더군요.” 나랏일을 하는 분들이 성과를 떨어뜨릴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개입의 역설’이다. 반값 등록금 정책을 실시한 지 10여년이 가까워지는데 지금 대학에서는 아우성이 그치지 않는다. 원성이 하늘을 찌르지만 일단 한번 시작된 국가 개입은 어려움이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날 때까지 멈추기 힘들 것이다.

역사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관찰 결과는 한가지 유력한 가설을 제시하게 만든다. 정부가 선의를 갖고 도움을 주거나 개입의 강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어떤 기업이나 산업이 몰락할 가능성은 크게 높아진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이뤄진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실험을 예로 들 수 있다. 죽기 며칠 전 김일성의 고뇌처럼 “내가 지금껏 인민들에게 흰 쌀밥과 고깃국 먹이는 것이 목표였는데, 동무들! 왜 이렇게 성과가 나지 않는가”라는 일성(一聲)도 따져보면 국가 개입이 가져올 수밖에 없는 예정된 파국을 말해준다.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은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기업의 방만한 투자, 무분별한 단기 외자의 유입 등 이런저런 원인들이 많다. 가장 큰 요인을 한가지만 들자면, 그것은 지나치게 오랫동안 지속돼온 금융에 대한 국가의 개입일 것이다. 개입이 결국 단기 외자 도입을 가속화하고 이것이 환란이란 엄청난 비극을 낳고 말았다.

1960년대 이래로 한국의 산업 성장사를 잠시만 되돌아보자. 국가가 깊숙이 개입해서 일어난 산업이 있는가. 계획과 지원이란 양대 정책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사업의 추진 여부는 상당 부분 기업가들에게 맡겨졌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투입된 금융이나 교육 부문은 제조업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뛰어난 인재들이 가장 많이 투입된 의료부문의 경쟁력도 투입 대비 산출이란 면에서 보면 성과가 현저히 낮다. 농업분야만 하더라도 개방에 대응해 정부재정 지원이 많았던 분야 가운데 하나지만 엄격하게 성과를 측정하면 기대보다 못하다.

오늘날에도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계속해서 개입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실물부문이 갖고 있는 경쟁력에 비해 중·고교나 대학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낮다.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이것저것 개입해서 낳은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본다. 반도체산업이나 전자·자동차 산업의 경우에도 정부가 시시콜콜한 분야까지 개입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한국경제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역대 정부마다 이런저런 명분을 내걸고 경기를 살리기 위해 많은 재정을 투입했다. 1998년 외환위기를 수습하면서 발생한 국가부채는 약 60조원이었다. 그러나 약 20년이 지난 2017년 기준으로 국가부채는 10여배가 증가한 640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돈을 그렇게 투입했는데도 왜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를 주목해야 한다. 난마처럼 얽힌 규제들이 현재와 같은 저성장을 고착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개입을 현저하게 낮춰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왜 서서히 가라앉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개입’이란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공병호는…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라이스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 ▲현 공병호경영연구소장 ▲저서 <공병호의 다시 쓰는 자기경영노트> 등 다수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추천광고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