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산물 생산연월일 표시 의무화’ 철회하라

입력 : 2021-06-09 00:00

농업 현실 외면 전형적 탁상행정

산지·유통 업계 부담 가중 불보듯

 

농산물 산지 관계자들과 유통인들이 농업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어설픈 탁상행정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식약처는 농축수산물에 ‘생산연도 또는 생산연월일(채취·수확·어획·도축한 연도 또는 연월일)’ 표시를 의무화한 ‘식품 등의 표시기준 고시’를 개정, 내년 1월부터 시행토록 했다. 기존에는 농·임·축·수산물 가운데 내용물을 시각·후각 등 관능으로 확인 가능하게 비닐랩 등으로 투명 포장한 것은 제조연월일(포장일 또는 생산연도) 한글표시를 생략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해당 조항을 삭제해버린 것이다. 직거래를 통해 유통되는 농산물 등은 예외로 했다. 지난해 5월 이뤄진 황당한 규제 조치다.

하지만 이해관계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는 충분한 협의도 없었고, 당사자인 농업계에도 사전에 이렇다 할 설명도 없어 1년여 지난 지금에서야 알려졌다.

바뀐 고시를 따르려면 상추 등 유통기간이 매우 짧은 신선농산물도 생산연월일을 표시해야 한다. 일정 월에 생산해 해당 월에 소비가 끝나는데도 생산연도 표시가 필요한 것이다.

감귤류나 겨울무처럼 연말과 연초 등 두해에 걸쳐 수확하는 작물도 걱정이다. 각각의 생산연도를 표기해야 해서다. 아울러 이들 작물의 경우 상당기간 저장 후 출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년도 생산 상품은 자칫 오래된 농산물이라는 오명이 붙어 소비 위축을 부를 수도 있다. 최근 소비가 늘고 있는 간편조리세트(밀키트)나 채소샐러드 등 생산연도가 섞인 농식품은 아예 표시 자체가 힘들다.

이번 고시 개정이 식약처가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하더라도 농산물 유통 현장의 실상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주무부처이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농식품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우리 농촌은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국인 근로자 유입이 거의 막히면서 일손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로 인해 인건비가 치솟고 각종 자재비까지 오르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운 고시를 이행하려면 무엇보다도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저장 농산물은 생산연도별도 공간까지 분리해 쌓아둬야 할 형편이다. 아울러 표시를 위한 설비까지 갖춰야 해 산지 농가나 유통업계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은 철회하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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