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업가치 헌법반영, 국민운동으로 승화되길

입력 : 2017-11-15 00:00

1991년 ‘쌀 수입개방 반대 서명’ 붐 이어 “헌법에 농업 공익적 가치 담자” 열기 확산

농식품부 ‘개헌 대응 TF’ 운영 힘 실어줘



1991년의 일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예외 없는 관세화가 협상의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우리 농업은 쌀마저 개방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큰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쌀 때문에 국제무역의 혜택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일부 개방론자의 주장이 나오는 등 쌀 수입개방 대세론까지 대두됐다.

농협은 이에 따라 쌀은 결코 개방해서는 안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쌀 수입개방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그해 11월11일부터 시작된 ‘쌀 수입개방 반대 서명운동’은 국민의 뜨거운 성원과 농협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2월18일 서명인원 1000만명을 돌파했다. 서명운동 전개 42일째인 12월22일까지 1307만8935명이 서명해 ‘최단시일 내 최다서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17년 11월. 농협은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담기 위한 국민 서명운동에 불을 댕겼다.

1일부터 시작한 ‘농업가치 헌법반영 서명운동’이 13일까지 150만명이 넘게 서명할 정도로 확산하고 있다. 도시 소비자부터 지방자치단체장·정치계·교육계 등의 참여가 줄을 잇고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담자는 운동에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개정된 후 30년 동안 그대로였다. 그래서 ‘철 지난 옷’처럼 각 산업의 역할과 가치를 시대의 흐름에 맞게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새로운 시대에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국회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만들어 헌법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의견을 수렴 중이다.

헌법이 바뀌지 않은 30년간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커졌고 무궁무진해졌다. 국민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식량안보부터 환경보전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이미 선진국들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농업·농촌 지원이 필요하다는 정당성을 명문화하고, 이를 근거로 국민적 공감대 속에 농업·농촌 지원의 확대 논리로 활용하고 있다. 스위스의 연방헌법이 대표적이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경제적으로도 엄청나다. 농촌진흥청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던 2006년 당시 환경보전 기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결과 67조원에 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식량안보 등 다른 가치까지 더해지고, 당시보다 공익적 가치의 중요성이 높아진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 가치는 이보다 훨씬 커졌을 것이다. 따라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담자는 서명운동이 이제 농협을 넘어 범농업계로 확산되고 국민운동으로 승화되기를 바란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농업·농촌 분야의 헌법 개정방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농업·농촌 개헌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에 들어갔다. 개헌 TF는 농업·농촌 분야 헌법 개정방향을 집중 논의할 계획이다.

법철학자 켈젠의 법단계설(法段階說)을 들지 않더라도 헌법은 최고 규범성을 갖는 국가의 최상위법이다. 30년 만의 헌법개정 기회를 맞아 국민의 기본권부터 권력구조까지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농업은 소외돼 있다. 오히려 국회 개헌특위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삭제 여부를 농민단체에 문의해 커다란 반발을 불러왔다.

국회는 헌법개정안을 만들 때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공감하는 국민적 열기를 반영해야 할 것이다. 개헌특위는 ‘국민과 함께하는 상향식 개헌’을 지향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독립된 농업조항을 신설해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역할, 국가지원 의무에 대한 철학과 근거를 명확히 하고, 경자유전의 원칙도 유지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 헌법정신을 바탕으로 국민적 공감대 속에 미래지향적 농업·농촌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농민들은 이번 서명운동에 보여준 국민 열기를 보다 우수하고 안전한 농축산물의 생산·공급과 쾌적한 휴식공간 제공 등으로 보답하기 바란다. 이를 통해 이번 서명운동이 새로운 도농상생 운동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하고, 수입 농축산물과의 경쟁에서 우리 농축산물을 지켜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6년 전 쌀 수입개방 반대 서명운동처럼 말이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반영한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돼 시행되는 날이 우리 농업·농촌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또 다른 농업인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이날은 국민과 함께 우리쌀로 만든 떡으로 잔치를 벌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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