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알셉’ 국회 비준에 앞서

입력 : 2021-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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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해 타결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 발효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18일 제조업분야, 21일엔 농수산분야 간담회를 열고 알셉 발효로 기대되는 효과를 설명했다. 업종별 간담회는 국회 비준에 앞선 절차다.

알셉은 아세안 10개 회원국과 한·중·일, 호주·뉴질랜드 15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협상 개시 선언부터 타결까지 꼭 8년 걸렸다. 15개국의 이해관계가 그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비준안을 8월말쯤 국회에 제출하고,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연내에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알셉 발효가 국내 농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협정문을 보면 우려할 사항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아세안에서 생산된 키위·체더치즈 관세가 즉시 철폐되고, 구아바·체리 등 54개 품목 관세는 10년 뒤 사라진다. 특히 중국산 녹용 관세는 20년, 일본산 청주(사케)와 맥주 관세는 15∼20년에 걸쳐 철폐된다. 곡물·과수·축산 등의 피해가 전방위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과거와 같은 피해 대책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업부 주최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농업계 인사는 “정부가 알셉에 따른 농업분야의 피해 규모를 연간 100억원 미만으로 분석한 것으로 안다”며 “개방 대책이란 것이 피해 규모를 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뭘 기대하겠느냐”고 했다. 일단 농업계는 기존 FTA 대책으로 도입한 피해보전직불제(이하 FTA 직불제)의 재점검을 벼르고 있다.

FTA 직불제는 한·칠레 FTA가 출범한 2004년 탄생했다. 당시 정부는 성난 농심을 달래고자 FTA로 국산 농산물 가격이 20% 이상 떨어지면 하락분의 80%를 보전해주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경제계는 ‘퍼주기’라고 비판했고, 농업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발동 요건 탓에 ‘하늘이 두쪽 나도 발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결과는 어땠을까. 2014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칠레 FTA 발효 후 9년(2004∼2012년) 동안 농업분야 피해를 1조원으로 분석했다. FTA 발효 전 추정치(10년간 5860억원)의 두배 수준이다. 하지만 한·칠레 FTA 정부 지원사업이 종료된 2010년까지 FTA 직불제는 단 한차례도 발동하지 않았다.

한·유럽연합(EU) FTA와 한·미 FTA 발효를 앞둔 2011년, 농업계는 간접피해를 인정해달라고 했다. 체리 수입으로 국산 참외값이 떨어지면 피해를 보전해달라는 요구다. 하지만 정부는 귀를 닫았다. 인과관계나 수치적 분석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정말 어려울까. 2017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내놓은 ‘한·EU FTA 이행상황 평가보고서’를 보면, 한육우는 5년 동안 330억원의 피해를 봤다. EU산 쇠고기 수입이 전혀 없었지만, 값싼 돼지고기·닭고기 수입이 늘면서 국산 한육우 소비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EU로부터 수입 실적 없는 품목의 미미한 피해액까지 산출했다. EU산 오렌지 수입이 국산 사과 생산액을 연간 3000만원 감소시켰다는 식이다. 간접피해의 정량화가 가능했던 셈이다.

한·칠레 FTA 이후 정부가 내놓은 농업분야 대책의 투자·융자 규모는 50조원에 이른다. 대부분 기존 사업에서 이름만 바뀐 융자사업이고, 극히 일부가 FTA 직불제 예산으로 책정됐다. 그나마 발동 요건을 충족한 품목의 직불금도 쥐꼬리 수준이다. 2015년 밤농가 585가구에 지급된 FTA 직불금을 모두 합치면 78만3000원이다. 1농가당 1338원꼴이다.

FTA 직불제는 국가 경쟁력 제고 과정에서 피해 보는 농가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개방화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이참에 발동 요건과 보상 수준을 현실화해야 한다. 알셉 비준안 처리에 앞서 국회가 이를 꼼꼼하게 점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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