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과수 화상병 오판이 남긴 것

입력 : 2020-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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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이놈 참 무지막지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서 체감하듯 한번 발생하면 후폭풍이 상상 그 이상이다. 끝장을 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전염병의 종류에 따라 사람·동물·식물 등 피해 대상이 다를 뿐이다.

요즘 농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대표적인 전염병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과수 화상병이다. 두 전염병은 일단 발생하면 피해가 엄청나고 치료약이 없는 게 공통점이다. 정부가 이들 전염병을 직접 통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의 대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는 점이다. ASF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신속하고 강력한 행정조치로 1년 가까이 접경지역 이남으로의 전염을 저지하고 있어서다. 접경지역 농민들의 피눈물이 밑거름된 것이기는 하나, 어쨌든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화상병은 다르다. 평가가 인색하다. 개인적으로 보기에도 엉성하다. 화상병은 2015년 경기 안성의 배 과원에서 국내 최초로 발생했다는 게 정부의 공식 발표다. 하지만 2000년대 초중반 북미에서 불법 반입된 묘목을 통해 국내에 유입됐다는 게 거의 정설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와 공동 연구한 연세대학교도 최근 “국내 유입 시점이 2015년보다 몇년 앞선 것으로 본다”고 밝힌 바 있다. 집중발생지역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의심 증상이 다수 발견됐지만, 당시 정부가 과수 수출에 차질을 빚을까봐 쉬쉬했다는 후문이다. 화상병의 위험성을 간과하며 오판한 셈이다.

국내 발생이 공식화된 이후의 대처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ASF와 달리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없어서다. ASF의 경우 가축방역심의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방역정책국이 방역실무를 담당하며 지자체 등과 협력한다.

반면에 화상병은 별도의 방역심의회가 없다. 부처 내 실무도 과수와 전혀 상관없는 식량정책국이 맡고 있다. 벼멸구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된 병해충을 담당한 경험이 있다는 게 이유라는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농촌진흥청은 연구기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당근과 채찍으로 지자체와 협력적 방역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 산하 영농지도기관과 애매한 공조체제에 그치고 있다.

방역지침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다. 발생률이 과원의 5% 이상 돼야 공적방제를 하도록 지침을 변경해 화상병 확산을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대표적이다. 위험성을 오판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대가는 크다. 국내 화상병 발생면적은 2015년 42.9㏊(43건)에서 지난해 131.5㏊(188건)로 늘었다. 올해 발생면적은 무려 330.6㏊(626건)에 달한다. 치료제가 없는 화상병은 확산되면 발생 과원의 나무를 전부 매몰 처분해야 한다. 이렇게 어설픈 대처를 지속하다가 국산 사과·배를 못 먹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정부가 초기부터 좀더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런 와중에 일부 공무원들이 공적방제를 일반방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빈축을 사고 있다. 공적방제를 지속하면 손실보상금 규모가 커져 정부나 지자체가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국가의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한 발상이다. 골치 아픈 방제 책임을 농민들에게 떠넘기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들이 공적방제를 고집하는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전염병 방제는 국가의 의무다. 과거의 잘잘못을 되짚어보고 방역체계를 재정비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특히 화상병은 방역심의회와 같은 정부 내 컨트롤타워 신설이 시급하다. 미적거릴 일이 아니다. 과거 역병이 번지면 나라님이 직접 팔을 걷어붙인 데는 이유가 다 있다.

남우균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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