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시골 노인들의 시린 가을

입력 : 2020-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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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나절부터 안 보이더니 낮엔 어디 다녀왔남?”

“….”

“아무튼 요즘 들에 나다닐 땐 조심햐. 멧돼지도 극성이고, 독사도 독이 올랐고.”

밤공기가 선선해질 무렵이었으니 이맘때쯤이었으려나. 언젠가 강원 횡성 병지방이란 곳으로 취재 갔을 때 일이다. 병지방은 계곡을 따라 난 독가촌으로, 이 집 저 집의 거리가 기백미터는 족히 되는 전형적인 강원도 오지였다. 그날 기자는 일정이 늦어져 취재 간 노인네에서 일박을 해야 했고, 넉넉한 시골 밥상과 그 집 영감님이 연거푸 따라주시는 소주 몇잔에 이내 잠이 들었다.

자정께나 됐을까. 소변이 마려워 설풋 잠에서 깨니, 친구가 찾아왔는지 그 시각까지 문밖에선 영감님의 얘기 소리가 나직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시간에 누가 마실을…. 집끼리 멀어서 놀러 오기도 힘들 텐데.’

한참을 듣다가 누가 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볼일도 봐야겠고 해서 살며시 밖으로 나오니… 이럴 수가, 영감님의 대화 상대는 다름 아닌 그 집 백구였다. 길어진 산촌의 초가을 밤을 영감님은 키우는 개를 앉혀놓고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시골 노인들의 고독이 이렇다. 차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도시건 해외건 화상통화가 가능한 세상이 됐지만, 이농으로 얼굴 맞댈 사람이 줄어든 데다 자식들도 대처로 떠나고 홀로 혹은 노부부만 남은 상황에서 고독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골 노인들이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더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급기야는 ‘비대면 추석’이라는 말 그대로 ‘웃픈’ 현실까지 맞닥뜨리게 됐다. 연초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삶의 기본이 된 이후 시골 노인들의 고립 심화는 예견된 일이었다. 당장 2월부터 노인들끼리나마 소통하는 공간이던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폐쇄됐다. 영농철 전까지 공동생활하다시피 해온 마을회관 등에 빗장이 걸리며 노인들은 하릴없이 각자의 집에서 ‘우두커니’가 돼야 했다.

쓸쓸함은 자식 손주들이 손잡고 휴가 오던 여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여전한 전염병 감염 우려에다 유난히 긴 장마와 각급 학교의 짧은 방학에 자녀들은 선뜻 길을 나서지 못했고, 시골 노인들도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마음을 짐짓 숨길 수밖에 없었다.

8월말,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는 벌초 오겠다는 자식들도 말려야 했다. 외지인의 방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지방자치단체가 벌초 자제를 당부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도 대놓고 ‘올해는 벌초 대행서비스를 이용해달라’고 권고하는 데는 노인들의 외로움 정도가 끼어들 계제가 아니었다.

이런 암담한 상황이 1년 내 이어져 그러구러 추석 대목이다. 전통도 중요하지만 질병 확산을 막으려면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기에, 지자체들은 ‘방문 대신 전화로 인사 나누면 코로나 도망가고 효심 깊어진다’는 휴대전화 문자를 공공연히 보낼 정도다. 몇몇 마을은 어쩔 수 없이 ‘아들딸아, 이번 추석엔 고향 오지 마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안 그래도 고독을 달고 사는 시골 노인들에게 지금의 코로나 시국은 형벌과도 같을 것이다. 감옥이 따로 없다는 넋두리가 빈말이 아닌 게, 그분들에겐 코로나19의 위험성보다 사회적 고립이 더 못 견딜 일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널린 일이 많아서, 병원이 멀고 귀찮아 진료를 안 받아서 그렇지 실상 시골 노인들 모두가 깊은 ‘코로나 블루’를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00명 언저리로 누그러들었다. 열흘 남짓 남은 추석, 부디 이 진정세가 지속돼 방역수칙을 최대한 지키면서 시골 어르신들의 쌓인 고독을 조금이나 보듬어드리는 명절이 되길 기대한다. 속절없는 올해 가을이지만, 그래도 자고로 가을이면 길은 고향으로 나 있다.
 

이승환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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