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서인경 말고

입력 : 2020-09-09 00:00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탔던 비둘기호 열차는 그야말로 콩나물시루 같았다. 입석과 좌석 구분이 없는 탓에 낯선 이들과 엉덩이며 어깨를 겹쳐야 했고, 통로 쪽 팔걸이에 엉덩이를 걸친 승객 때문에 화장실 가기도 어려웠다. 완행열차답게 아침 6시 정각에 출발한 기차는 느릿느릿 250㎞를 달려 점심 무렵 서울역에 도착했다. 그 사이 30여개의 크고 작은 역을 들렀는데, 서울역 가까이서 탑승하는 승객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새벽밥을 먹고 꼬박 6시간을 시달려야 갈 수 있는 서울을 누구는 고작 1시간이면 가는 게 아닌가. 게다가 거리에 비례하는 기찻삯도 6분의 1밖에 안된다니…. 어린 눈에 서울 사람은 전생에 지구를 구하고, 서울 근교 사람은 나라를 구한 것처럼 보였다.

서울은 항상 붐빈다. 국회·청와대는 물론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이 몰려 있다. TV에 나오는 유명 의사와 병원도 죄다 서울에 있다. 서울 집중화는 1990년대 신도시 개발과 맞물려 ‘서인경(서울·인천·경기) 공화국’으로 팽창했다. 그 결과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는 기형적인 상태가 됐다. 인구만이 아니다. 국내 1000대 기업 본사의 74%, 신용카드 사용액의 81%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대한민국의 권력과 자본·인구가 집중된 수도권은 고도비만, 지방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문제는 서인경 공화국의 심각성을 정부가 가벼이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3기 신도시 건설’ ‘수도권 광역교통비전 2030’을 내놨다. 수도권에 신도시 5곳을 추가로 건설하고, 수도권 외곽과 서울 도심을 연결하는 급행철도(GTX) 3개 노선을 구축하는 내용이다.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서울 바깥까지 서울처럼 개발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분히 서인경 공화국다운 발상이다. 이런 개발식 대책은 집값을 잡기는커녕 수도권 인구 유입을 부추겨 지방소멸을 부채질할 것이다.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지방의 눈으로 바라보자. 지방소멸은 단순히 특정 기반시설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교육·의료·문화·생활서비스 등 여러 문제로 발생한다. 하지만 중앙의 낙후지역 지원은 수도권과의 접근성 제고를 위한 도로 개설 등 전형적인 개발시대 인프라사업 위주로 추진된다.

일단 지방에 뭐가 없는지 살펴보고 나서 채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산부인과·어린이집·도서관·파출소·버스노선…. 경제성만을 따져선 안되는 것들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다. 일자리가 늘면 아이 울음소리도 커지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된다. 수도권에서 멀수록 법인세를 대폭 낮춰주는 프랑스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파격적’인 대책이 아니면 지방회생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의 반발이 만만치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들한테 맡겨놓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 걸 경험하지 않았는가.

최근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위원회와 지방 협의체가 손을 잡았다’는 보도자료가 들어왔다. 참여 단체는 대통령 직속·소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자치분권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와 지방정부·지방의회 연합체인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등 모두 8곳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방소멸을 고민한다는 점 외에 또 있다. 사무소의 전화번호가 ‘02’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지방 문제를 꼭 서울에서만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까.

지방소멸이 누군가에게는 추상적인 얘기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실체적인 불편과 고통이다. 불편의 장소에 와보지 않고 대책을 운운하는 것은 그곳에서 필요한 게 빠진 채 정책이 수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방 문제는 서인경이 아닌 지방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김상영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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