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착한 소비와 선한 영향력

입력 : 2020-07-31 00:00


취재로 인연을 맺은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의 복숭아농가에서 20년 넘게 <앨버트> 복숭아를 구매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당시 취재원인 농민은 황도 수확철이 아닌 것을 아쉬워하며 복숭아 딸 때 다시 들러달라고 당부했다. 비상품과로 만든 병조림 복숭아 맛에 이미 흠뻑 반한 터라 늦가을, 농가를 다시 찾아 기분 좋게 몇상자 구입했다. 그러자 농민은 수확할 때 흠집이 생긴 ‘파(破)치’라며 구매한 양보다 더 많은 복숭아를 얹어줬다. 어차피 생물이라 금방 상하니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고 입소문이나 내달라고 했다. 이후 연례행사처럼 달콤한 복숭아를 직거래하고, 덤으로 파치를 얻는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파치는 일명 ‘비규격품 농산물’ ‘못난이 농산물’ ‘B급 농산물’로 불린다. 열매가 익을 때 새가 쪼아 먹었거나 수확하면서 생긴 흠집 등으로 상품성이 떨어진 농산물을 가리킨다. 주로 사과·배·복숭아·토마토·애호박·버섯·가지 등에 발생하는데, 외형이 못생겼을 뿐 맛이나 영양 면에선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규격화된 상품을 취급하는 도매시장이나 유통업체에선 반길 리 만무해 대개 가공용으로 헐값에 팔리거나 버려지기 일쑤다.

그런데 반전이 생겼다. 2007년 10월, 경북도와 경북농협지역본부가 판매에 나선 ‘하늘이 만든 보조개 사과’가 그 주인공이다. 그해 6월 경북 북부 사과 주산지에 쏟아진 우박으로 사과 7만여t이 상품성을 잃었는데, 우박 맞은 흔적을 볼에 팬 보조개에 비유한 예쁜 이름을 붙인 것이 주효했다. 맛과 향은 손색없으면서 저렴한 가격 덕분에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피해 농가의 시름도 덜어줬다. 이후 우박 맞은 사과·배·천도복숭아 등은 ‘보조개’라는 수식어를 달았고,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알뜰 쇼핑 목록에 추가됐다. 이같은 발상의 전환은 소비자들로부터 ‘못난이 ○○’ 대신 ‘팥쥐 딸기’ ‘귀염둥이 복숭아’ 같은 참신한 후속작을 내놓기도 했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비규격품 농산물은 전체 물량의 20% 수준이라고 한다. 매끈하지 않고 상처가 난 것, 크기가 기준보다 작은 것, 일손 부족으로 미처 수확하지 못해 크게 자란 것 등이 해당된다. 다행히 2013년부터 이런 농산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등장했고, 농촌진흥청 자료를 보면 2014년 이후 소비자들의 온라인 구매 비중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에는 수급이 불안정한 지역특산물을 활용해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는 TV프로그램 <맛남의 광장> 덕분에 비규격품 농산물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방송인 백종원씨가 강릉 못난이 감자에 이어 너무 잘 자란 해남 왕고구마와 여주 가지 등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실상을 소개하고 소비를 촉진시키는 선한 영향력을 미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 소비자들은 똑같은 정성을 쏟은 농민들의 수고로움을 알게 됐고 농산물을 구입하는 착한 소비를 일으켰다. 또 다양한 요리법을 공유하고, 더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우리농산물 소비에 동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더욱이 대량 구매 요청을 선뜻 수용한 기업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귀감을 보였다.

농민의 아픔을 공감한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위로하고 서로에게 힘이 됐으니 이것이야말로 선한 영향력이다. 지혜로운 소비자가 착한 소비를 생활화한다면 우리 농업·농촌도 한단계 발전할 것이 틀림없다. 요즘 같은 시국에는 제철 농산물로 잘 먹고 건강관리 잘하는 것이 선한 영향력이요, 애국하는 길 같다.

신정임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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