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코로나 시대의 신토불이

입력 : 2020-07-03 00:00


그땐 당연한 줄 알았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당연한 듯했다. 시간이 흐르자 어느 순간 잊혀졌다. 신토불이(身土不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신토불이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건 1989년 8월이다. 요즘에야 국어사전에 등재돼 있지만 당시만 해도 낯설기 그지없었다. 농협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신조어였기 때문이다. 농협은 일본 저서와 국내 각종 고문헌을 조사해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신토불이라는 용어를 세상에 내놓았다. ‘몸과 땅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자기가 사는 땅에서 산출한 농산물이라야 자신의 체질에 잘 맞는다는 의미’라는 정의까지 내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신토불이는 우리농산물 애용운동의 대명사가 됐다. 농산물 시장개방을 반대하는 상징적인 용어이기도 했다. 당시엔 농산물 시장개방을 논의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다자간무역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한창이었다. 시장개방에 대한 농민들의 반대가 거셌던 터라 신토불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엄청났다.

신토불이운동의 진수는 1991년 쌀시장 개방 반대 범국민 서명운동이었다. 서명운동 돌입 42일 만에 전체 인구의 30%에 달하는 1307만여명의 서명을 받아내 기네스북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후 우리밀살리기운동·농도불이운동·농촌사랑운동 등으로 승화돼 농업·농촌의 희망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국민들의 인식이 확 바뀌었다는 점이다. 세계화·개방화 시대에 신토불이가 걸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수입 농산물에 대한 거부감도 옅어졌다. “반도체를 수출하고, 농산물은 수입하는 게 이익”이라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왔다.

공무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년 전 고위 외교관과 식사하며 얼굴을 붉힌 경험이 있다. 해당 외교관은 고위 농업공무원과의 공식 만찬임에도 불구하고 “국산 농산물이 너무 비싸고,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업부문에 굳이 세금으로 보조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설전이 벌어졌고 고위 농업공무원의 얼굴도 붉어졌다. 이게 농업의 현실이다 싶었다. 외교관의 인식이 이 정도면 농업 통상협상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 들었다.

반전이 묘미라고 했던가. 반전이 찾아왔다. 악재로만 여겨졌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계기가 됐다. 코로나19로 수입 농산물이 급감하면서 식량안보와 국산 농산물의 중요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어서다.

코로나19가 일깨운 국산의 재발견이자 소중한 기회다. 기회는 살려야 한다. 이참에 국산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1~2인가구가 늘어나는 등시대 흐름에 맞게 형식과 내용을 달리해야 한다. 국산의 가치와 국산이 왜 좋은지 합리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교육도 뒤따라야 한다.

국산 농산물을 주원료로 한 가공식품·밀키트(Meal Kit)·소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이런 제품에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조건 국산이 최고’라는 구호는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 국민들이 가격·품질·안전성 등을 고려해 국산을 우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시급하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던진 파장은 엄청나다. 농업도 대변혁이 불가피해 보인다. 농업대변혁에 대비하는 방안 중 하나가 국산의 가치를 제대로 홍보하는 일이다. 국산의 가치를 제대로 홍보하기 위해선 신토불이 정신을 다시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시대 흐름에 맞는 신토불이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우균 (산업부장)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