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그 많던 복이 아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입력 : 2020-06-19 00:00 수정 : 2020-07-01 00:16


뻐꾸기 울음소리도 한결 청량해진 이맘때면 모내기를 마친 마을 어른들은 날 잡아 뒷산 절골계곡으로 향했다. 하루 먹고 마시며 봄농사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나무 그늘에서는 걸쭉한 어탕이 끓고, 소댕에서는 지짐이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서로를 위로하며 잔이 오가는 가운데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고, 그때 장구채를 잡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복이 아재였다. 덩덩쿵따쿵 덩따쿵따쿵따쿵. 다른 어른들도 사물(四物)은 제법 만졌지만, 역시 회취(會聚)의 흥을 돋우는 건 복이 아재였다. 장단이 어찌나 신나는지 평소 근엄하던 문중 어른도 이날만큼은 체면을 잠시 내려놓았다.

복이 아재는 물고기를 잡는 데도 도사였다. 어찌나 요령이 좋던지 도랑에 물이 불어난 여름이면 족대와 지렛대만 들고 나가도 피라미나 꺽지를 양동이 하나 가득 채워 왔다. 그뿐이랴. 명절이나 마을 대소사 때면 돼지 잡는 것도 주로 복이 아재 몫이어서, 그의 손을 거친 돼지고기는 유난히 맛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초가지붕 이을 때의 ‘선수’도 복이 아재였다. 밑에서 엮어둔 이엉을 올려주면 복이 아재는 새끼줄을 이리저리 놀려가며 이듬해 큰 장마에도 끄떡없는 지붕을 엮어내곤 했다. 구들 보수에도 일가견이 있어, 어느 집 온돌이 시원찮다는 소리가 들리면 여지없이 솜씨를 발휘해 아랫목 윗목 할 것 없이 두루 뜨끈한 구들로 바꿔놨다.

초겨울 찬바람에 명을 달리한 마을 어르신을 떠나보내는 날, 꽃가마 앞에 선 그의 상엿소리는 또 어찌나 구성지던지…. 다시 못 올 이승을 뒤로하고 북망산 찾아가는 망자의 절절한 심사를 내 것인 양 구슬피 전해 온 마을의 눈물을 쏙 빼놓곤 했다.

이처럼 팔방미인이면서도 인정 또한 넘쳐, 온 동네 아이들이 꽁꽁 언 논배미에 모인 겨울이면 종종 얼음판에 나타나 고장 난 썰매를 뚝딱뚝딱 고쳐주던 복이 아재….

기자의 고향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였던 복이 아재는 곱씹어보면 비단 어느 한 마을에만 국한된 인물이 아니었고, 또 한마을에 한명만 있지도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는 농촌 곳곳에 있었고, 농경문화를 보고 익히며 성장해 다시 삶에서 녹여낸 바로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들이기도 했다. 오늘날 문명의 바탕엔 복이 아재들이 계승·발전시켜온 농경문화가 깔려 있기에, 이분들은 응당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지금 농촌 현장에선 공익 증진과 거기에 기여하는 농민들의 소득 안정을 위한 공익직불제가 시행돼 이달말까지 신청을 받고 있다. 농지 형상과 기능 유지, 식량의 안정적 공급, 환경·경관·생태계 보전, 농촌사회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 보전 등이 공익의 사례다. 자잘한 과제들은 남았지만 나라가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직접 지원금을 준다는 점에서 ‘농(農)’과 관련한 대대적인 인식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나브로 복이 아재들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공익직불제 관련법을 죽 훑어봐도 농촌사회의 전통과 문화 보전, 즉 ‘땅 위에서 영위돼왔고 또 전승해야 할 문화’에 대한 언급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아 못내 아쉽다. 굳이 찾자면 ‘마을공동체 공동활동에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참여할 것’ 정도가 고작이다. 구체적으로 계량화하기 힘든 점은 있지만, 그렇더라도 돈 주는 쪽도 돈 받는 쪽도 이 부분엔 왜 이리 인색한지.

1975년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티베트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오래된 미래’를 본 건 그 지역이 농지와 경관만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영위되는 모든 활동에 삶의 지혜가 녹아 있고 기능이 살아 숨쉬는 종합체여서다.

이승환 (농민신문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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