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귀농하면 산재·고용보험은 되나요?”

입력 : 2020-06-05 00:00 수정 : 2020-07-01 00:16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을 겪으면서 흥미로운 현상 하나가 발견된다.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의 민낯이다. 미국의 국민건강 관리는 민영의료보험에 의존한다. 보험료가 저렴한 공공의료보험 가입자는 전체 미국인의 34.4%에 불과하고, 어떤 의료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은 인구도 8.5%에 달한다. 미국에서 의료보험 미가입자가 코로나19 치료를 받을 경우 병원비는 7만5000달러(약 9200만원)까지 청구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K(한국형)방역’과 함께 국격을 드높이고 있다.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코로나19 치료비는 ‘0원’이다. 검사비는 16만원 정도고, 방역당국의 검사 대상이면 무료다. 인구수 대비 한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미국의 1.5% 수준에 불과한 배경에는 건강보험이 있다.

건강보험을 비롯해 국민연금·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은 정부가 관리한다는 의미에서 사회보험으로 불린다. 민영보험으로는 충분히 담보할 수 없는 위험까지 보장해주는 강제성을 띤 보험이다. 국민, 그중에서도 근로자라면 4대 사회보험의 혜택을 누려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직업이 있다. 바로 농민이다.

산재보험은 1964년 도입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이다. 산재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사고 치료비는 물론 장애급여·유족급여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농민은 독립경영인이라는 이유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장기 치료·요양이 필요한 사고를 당하면 가구원 전체가 생활고에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농업계는 오래전부터 농작업 재해를 산재보험 수준으로 보상해줄 것을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해왔다. 2000년 이후 치러진 4차례의 대통령선거에서 주요 후보들은 이를 농정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약속을 지킨 당선인은 아무도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역시 기존에 판매되던 ‘농업인안전보험’의 보장 수준을 조금 높였을 뿐이다.

일각에선 농민을 산재보험의 범주에 넣는 것에 고개를 젓는다. 농업계 내부에서도 “보험료를 낼 정도의 농민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정말 어려운 문제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0개 가운데 22개국은 농민 특성에 맞는 산재보험제도를 도입해 사고를 당한 농가의 재활을 돕고 있다. 우리의 경우 재정이나 농가 부담을 감안해 일단 임의가입을 통해 농민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라도 터주는 게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의무가입으로 바꿔 사회보험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 농어민 대상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 이런 길을 걸어왔다.

농민이 사각지대인 사회보험엔 고용보험도 있다. 현행법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을 때 생활 안정과 구직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농민은 임의가입마저도 차단돼 있다. 자연재해나 사고, 이농, 임신·출산으로 생업을 잃었을 때 실업급여·모성보호급여 같은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전 국민 고용보험제’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없애는 논의가 활발하지만, 농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농민의 실업은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인식은 오히려 농촌사회의 안전망을 더욱 헐겁게 할 뿐이다.

“4대 사회보험 중 2개만 가입할 수 있다는 말에 예비 청년농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어요.” 최근 만난 귀농·귀촌 강사의 이야기다. 사회보험이란 이름에 걸맞게 사각지대를 없애는 사회적 노력이 시급하다.

김상영 (농민신문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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