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망하는 건 순식간이다

입력 : 2020-04-03 00:00

“아직도 그대로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외형과 구성원만 변했을 뿐 속내를 들여다보면 별반 달라진 게 없어서다. 농산물도매시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랫동안 농산물 유통 기자로 활동하다 10여년 만에 다시 업무를 맡게 된 소감이다.

이 기간 도매시장의 외부 유통환경은 그야말로 급변했다. 선진 유통기법이 속속 도입되고 물류 기계화와 상품화도 급속히 진행됐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유통기업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한때 소비지를 좌우했던 일부 생산자단체들도 유통환경 변화라는 격랑을 이기지 못하고 그저 그런 출하단체로 전락했다.

이러한 유통환경의 변화에 도매시장은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다. 특히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은 변화에 비켜선 듯한 느낌마저 든다. 농산물도매시장의 핵심이자 농산물 기준가격을 제시하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다.

도매시장법인들은 여전히 수수료 사업자의 특권에 안주하는 모양새다. 물량만 충분히 유치하면 문제없다는 식이다. 과점 형태의 영업이라 굳이 유통개선에 나서지 않아도 수익을 내는 데 지장이 없어서일 것이다.

중도매인들은 고령화로 인한 영업력 저하가 심화된 상태다. 신규 판매처를 개척하기보다 기존 영업선 유지를 우선시하며 시대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 중도매인의 탈법거래가 근절되지 않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역회사 하나 없이 하역노조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도 가락시장의 현주소다. 팰릿 출하 농산물을 재분류한 뒤 하역노조가 다시 옮기는 전근대적인 관행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하역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하역 기계화를 통한 유통비용 절감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시장개설자인 서울시는 상장예외품목 확대와 시장도매인 도입과 같은 거래제도 개선에 치중해 소모적 논쟁만 가열하고 있다. 유통개선보다는 좀더 편리한 방향으로 시장을 관리하기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이들 유통주체에게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다. 여태까지 별 탈 없이 잘나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인식이 엿보인다. 유통개선에 미온적인 것도 공통점이다. 유통개선에 완전히 손을 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하세월이다. 가락시장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렇다.

그동안의 역사를 보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도매시장법인은 1985년 가락시장 개장 이래 단 한번도 재지정에 탈락한 사례가 없었던 데다 자본금 대비 당기순이익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블루오션에서 ‘안전빵’ 장사만 한 셈이다. 중도매인도 한눈팔지 않으면 장사에 문제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하역노조에게는 초창기부터 물류개선이 남의 일이었다. 도매시장 경유율이 한때 30%대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50%대를 회복한 점도 이들의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을 키웠으리라 짐작된다.

문제는 이러한 성공 공식이 앞으로도 유효하겠느냐는 점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하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유통환경 변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도매시장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다.

공영도매시장은 농민과 소비자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농민에게는 안정적이면서 제값 받을 수 있는 농산물 판로처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물류개선으로 유통비용 절감에 앞장서는 것도 본연의 역할 중 하나다. 이러한 본원적 역할과 기능이 훼손되면 더이상 존재 이유가 없다.

온라인으로 저녁 늦게 농산물을 주문해도 이튿날 새벽에 배송받을 수 있고, 차에 탄 운전자에게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는 시대다. 도매시장이 제 역할을 못하면 다른 유통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게 유통개혁이다. 망하는 건 한순간이다.

남우균 (농민신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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