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라떼는 말이야~

입력 : 2020-05-08 00:00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 학교신문을 접한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왠지 모를 소속감에 뿌듯했고, 대학신문 기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도전해 꿈을 이뤘다.

학교신문을 인쇄하기 위해 매주 화요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거대 신문사를 찾는 일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인쇄소 특유의 잉크 냄새가 밴 공간엔 납활자가 서체별·크기별로 빽빽했다. 본문 활자 중에 ‘전두환’ ‘이순자’ ‘대통령’ 등이 하나로 주조돼 있어 놀랐다. 서슬 퍼렇던 5공화국 시절, 활자뽑기할 때 오탈자를 막기 위한 조처였다.

당시 모든 신문은 활판인쇄였다. 문선공(文選工)이 기자가 쓴 원고대로 납활자를 골라내면 식자공(植字工)이 판을 짜고 완성된 조판을 인쇄기에 올려 지형과 연판을 떠 인쇄하는 체계다. 컴퓨터 자판으로 원고를 작성하고 컴퓨터로 조판해 PS(피에스)판으로 인쇄하는 요즘 시스템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공정이다.

1964년 8월 창간해 매주 발행하던 <농민신문>이 1988년 1월 주 2회 발행으로 확대되면서 운 좋게 입사했다. 그런데 대학 때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첫발부터 당황했다. 학교신문은 가로 편집이어서 원고지를 가로로 썼는데, 사회에서 맞닥뜨린 신문은 세로 편집이 아닌가. 원고지에 세로로 삐뚤빼뚤 쓰던 기사는 1995년 업무용 컴퓨터를 받으면서 해소됐고, <농민신문>도 시대 변화에 발맞춰 1997년 5월 전면 가로 편집을 도입했다. 이에 앞서 1991년 발행횟수를 주 3회로 늘리면서 컴퓨터 조판시스템을 구축했다. 납활자와 숙련된 문선공·식자공 없이 자체적으로 신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놀라운 변화는 지방주재기자 운용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89년 처음 배치된 지방주재기자 4명은 원고를 작성하면 팩스로 전송했고, 사진은 특급우편을 이용했다. 어쩌다 화급을 다투는 사진은 필름째 고속버스 편에 부쳤고, 기자가 직접 강남터미널까지 나가서 찾아와 인화했다. 지금으로선 너무나 구닥다리 같은 이 방법을 2000년대 들어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전까지 애용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기사와 사진 전송을 즉시 해결하는 요즘 기자들에겐 공감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젊은 세대가 극혐하는 “라떼는 말이야~(기성세대가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허세 섞인 무용담을 들려줄 때 전제하는 ‘나 때는 말이야~’를 비슷한 발음으로 빗댄 말)” 식으로 이전 사례를 풀어놓은 까닭은 세상이 너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6일 개막한 한국 프로야구를 미국과 일본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을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모두 불과 30년 사이에 몸소 겪은 엄청난 환경 변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19년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의 정기구독률은 6.4%에 불과하다. 1996년 69.3%였는데 스마트폰이 본격 등장한 2010년 이후로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다. 열독률도 12.3%로, 1996년 85.2%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반면 종이신문을 포함해 다양한 수단으로 기사를 읽은 비율을 의미하는 결합열독률은 2018년 86.1%, 2019년 88.7%로 높아지는 추세다. 신문사가 고비용을 투자해 생산한 기사를 수용자들이 종이신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찾아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더 변화무쌍할지 끝을 모른다는 것이다.

흔히들 기성세대는 ‘꼰대’로, 젊은 세대는 ‘버릇 없는 요즘 애들’로 표현한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오랜 연륜과 지혜가 있어 시행착오를 줄이고, 요즘 애들의 꾸준한 반란(?) 덕분에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는 것 아닐까.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세대간 갈등 극복과 급변하는 시대에 잘 적응하는 방법으로 공감과 소통을 다시 생각해본다.

신정임 (농민신문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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