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올해는 벚꽃도 저 혼자 폈다 지게 생겼다

입력 : 2020-03-20 00:00


남쪽에서 올라오는 소식엔 꽃 얘기가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벚꽃 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단다. 기상정보 사이트에서는 이번 주말, 군항제로 유명한 경남 창원 진해에서부터 개화가 시작될 거라고 한다.

춘삼월이면 우리나라 어디서든 벚꽃 보기가 어렵지 않지만, ‘그해’ 황홀경에 도취한 후로 나는 경남 하동 화개 쌍계사 십리벚꽃길을 잊지 못한다. 화개천 양쪽으로 4㎞나 이어진 규모도 규모이려니와, 하나같이 아름드리인 벚나무 고목들이 일시에 연출하는 백색의 향연에 가슴이 뛰고 정신이 아찔했었다. 그야말로 지리산 온 남쪽 자락이 별천지였다. 부족위외인도야(不足爲外人道也)라. 우연히 무릉도원을 본 어부에게 거기 사는 사람들이 ‘바깥사람들에게는 전하지 말아달라’고 했다는 <도화원기(桃花源記)> 속 비경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십리벚꽃길에서는 웃음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의 하이쿠 시인 고바야시 잇사가 “꽃그늘 아래 생판 남인 사람 하나 없다”고 했듯 벚꽃에 취한 선남선녀들은 서로 지나치면서도 스스럼이 없었고, 너나없이 들뜬 심사를 숨기지 않았다. 화개 사람들 말대로 ‘옷깃만 스쳐도 정분날 만한’ 정취였다.

꽃비 날리는 벚나무 아래서 마시는 막걸리 한 잔도 그만이었다. 아빠·엄마·장남·며느리 옷도 벗어놓고 과장·부장도 내려놓고 권커니 잣거니 하다보면 잠시나마 일상의 스트레스는 저 너머의 얘기였고, 그때 하늘하늘 날아와 잔에 떨어지는 꽃잎은 “오늘은 너를 신선으로 만들어주마”며 취흥을 돋우는 추임새이기도 했다.

밤 벚꽃도 압권이어서, 낮 벚꽃이 화사함의 극치라면 밤 벚꽃은 도도했다. 꽃 중엔 밤이면 봉오리를 오므리는 것도 있지만 벚꽃은 밤에도 자태를 흐트러뜨리는 법이 없는 데다, 깜깜한 밤하늘에 딴 데 눈 둘 곳도 없으니 오직 자기만 보라는 듯 교태를 더 흩뿌렸다. 오롯이 벚꽃에만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이 밤 벚꽃을 더 높이 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람들이 벚꽃에 열광하고 벚꽃 구경이 봄철의 대표적인 여흥 문화로 자리하게 된 건 잠시 잠깐 사이 지나가는 삽시간의 환상이어서다. 벚꽃이 지고 나면 벚나무는 그저 그렇고 그런 나무로 돌아가기에 사실 벚꽃은 벚나무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정열적으로 폈다가 지는 그 찰나를 즐겨야 했으니, 그 간절함에 ‘벚꽃놀이’란 말이 사전에도 오르고 기상청 관측예보에 벚꽃 개화 지도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한데 올봄은 시절이 하 수상해 벚꽃 아래 멍석을 펼치지도 못할 판이라 무척 아쉽게 됐다.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 진해 여좌천, 전북 전주~군산간 번영로, 경북 경주 보문단지, 충북 청주 무심천변, 서울 여의도 윤중로 등 주요 벚꽃 군락지들이 3월말~4월초에 열기로 한 벚꽃축제를 줄줄이 취소한 것이다. 물론 일부 열혈 상춘객들은 마스크와 소독제로 중무장을 하고 길을 나서기도 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언제 어떻게 옮겨 다닐지 알 수가 없기에 가는 사람도 맞이하는 사람도 딱히 마음이 편할 순 없다.

사정이 이러니 올해는 벚꽃 구경을 건너뛰게 돼 입맛만 다셔야 할 상춘객도 상춘객이지만, 정작 딱한 건 손님맞이 준비로 들떠 있다 이 시국에 와달라고 하소연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는 벚꽃 명소 주변 상인과 농부들이다. 벚꽃철 특수를 노리고 초봄부터 지역특산물이며 봄나물들을 애써 준비해놨는데 그 마음이 오죽할까.

올 때는 올 듯 올 듯 애를 태우다가 갈 땐 이만 총총 바쁘다며 훌쩍 떠나버리는 시집간 딸처럼, 또 금방 가버릴 봄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야 조금 뒤로 미룰 수라도 있지만 개화는 늦출 수도 없고, 올해는 저 혼자 폈다 지는 벚꽃을 보며 여러 군데서 혀만 차게 생겼다.

이승환 (농민신문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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