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돼지아빠 힘내라

입력 : 2020-02-21 00:00


#1 지난해 그와 인연을 맺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너무 젊었기 때문이다. 그는 36세 돼지띠였고 경기 연천에서 돼지를 키웠다.

2019년은 기해년(己亥年)으로 ‘기(己)’는 황금색을, ‘해(亥)’는 돼지를 뜻해 ‘황금돼지의 해’로도 불렸다. 황금돼지 해를 맞아 <농민신문> 신년 특집호에 ‘돼지띠 농민들의 새해 소망’을 소개하기로 했다. 나이가 많은 돼지띠 농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36세이면서 돼지를 기르는 청년농부 찾기는 어려운 숙제였다. 짐작하듯 농촌에 젊은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수소문 끝에 힘겹게 그를 찾았다. 한국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사과농사를 지었으나 저온피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과수농사를 접고 양돈업을 하는 부친의 도움을 받아 2016년부터 비육돈을 생산하고 있었다. 사과보다 소득이 높아 희망이 보인다고 했다. 2018년에는 폭염으로 걱정을 많이 했지만 미생물순환시스템 등 최신 시설을 갖춘 덕분에 돼지들이 잘 커 출하에 차질이 없었다고 말할 때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본론으로 들어가 새해 소망이 뭐냐고 물었다.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구제역 때문에 고민이 많다며 가축질병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돼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해 9월17일 인접한 경기 파주에서 국내 처음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했다. 이후 연천까지 번졌고 그의 농장 돼지가 ASF에 감염되지는 않았지만 예방적 살처분 조치로 모두 땅에 묻혔다.



#2 파주에서 처음으로 ASF가 발생한 직후 지역농가의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2500여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는 농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웃에서 ASF가 발생했으나 농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밝았다. 가축전염병을 자주 경험한 양돈농가들은 그동안 시설에 투자를 많이 해 방역에만 힘쓰면 크게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폐사율이 100%에 달하는 ASF는 처음이어서 당혹스럽다고 했다. 사태가 마무리되면 소주 한잔 마시자는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다음날 파주에서 또 ASF가 발생했다. 통화했던 그 농가의 농장이었다.



#3 “저의 희망사항으로 끝날지라도 말하고 싶습니다. 건강한 돼지를 (ASF 확산을 막고자) 땅에 묻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하나하나 내 손 거쳐 안 자란 돼지가 없고…. 오늘도 돼지를 살피다 맑은 눈을 보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입니다. 미리 겁먹고 싸잡아 땅에 묻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막아주세요.”

노트에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쓴 편지였다. 수신인은 축협조합장이었다. 발신인은 파주에서 돼지를 키우는 농장주의 아내였다. 예방적 살처분으로 자식처럼 키운 돼지를 모두 땅에 묻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살처분을 앞뒀지만, 농장에서 돼지를 둘러보고 들어온 신랑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보고 잠을 잘 수가 없어 편지를 썼던 것이다.



ASF 발생 이후 해가 바뀌었지만 위 세곳 농가의 축사는 아직까지 텅 비어 있다. 경기 파주·연천·김포, 인천 강화지역 양돈농가가 같은 상황이다. 돼지가 한마리도 없으니 당장 소득은 없고 빚만 쌓이고 있다. 재입식을 기다리다 지친 농가들은 얼마 전 국회 앞에 모여 정부에 조속한 재식입 허용과 로드맵 제시를 촉구했다. 야생멧돼지에서 ASF 확진이 이어져 재입식 허용을 늦추고 있는 정부 입장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ASF 양성 야생멧돼지가 발견되지 않고, 지역에 야생멧돼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는 김포·강화 지역부터 재입식을 허용해달라는 농가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아 마이너스 통장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돼지띠 청년농부’가 활짝 웃길 기대한다.

김은암 (농민신문 취재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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