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들

입력 : 2019-11-22 00:00


기쁨과 대립되는 감정이 슬픔이다. 슬픔은 외부의 이런저런 요인으로 인해 피동적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문득 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독일 시인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떠올라 찾아봤다. 우는 아이, 숱한 세월이 흐른 후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발견될 때, 추수 후 가을밭에 보이는 연기, 철창 안 죄수의 창백한 얼굴….

찬찬히 글을 읽는데 얼마 전 농촌 들녘에서 만났던 한 농민의 원망 섞인 말이 머릿속에 선명해졌다. 그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민의 삶이 슬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촌실정을 외면하고 눈치 없이 떠들어대는 ‘촉새’만 없어져도 한결 덜 슬플 것이라고 뼈있는 말을 했다.

동북아시아 북부지역에 서식하며 봄·가을에 우리나라를 거쳐 가는 나그네새가 촉새다. 국어사전에선 “언행이 가볍거나 방정맞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도 추가로 정의한다.

그러고보니 요즘 언론의 행태가 간혹 촉새를 연상시킨다. 농업·농촌 현실을 곡해한 뉴스로 종종 농민들을 슬픔 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김장 관련 뉴스만 해도 그렇다. 최근 대다수 언론은 우리나라 주부 54.9%가 올해 김장 포기를 선언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주부들이 김장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 등 후유증을 우려해서란다. 특히 주부 네명 중 한명은 김장 후유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고 부연설명까지 곁들였다.

하지만 이 뉴스는 농민, 특히 배추·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슬프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마디로 ‘올해는 김장을 포기한 주부가 전체의 절반을 넘으니 당신도 포장김치를 사다 먹어라’고 하는 메시지를 김장을 준비하는 주부들에게 뉴스로 전달했으니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뉴스의 출처가 국내 굴지의 김치 제조업체라는 점이다. 김장을 포기하는 주부가 늘면 누가 유리하고 누가 불리하겠는가. 게다가 언론이 전통 식문화의 ‘꽃’인 김장을 장려하진 못할망정 김장을 포기해도 괜찮다는 투로 지면을 할애했으니 촉새의 참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김장채소가격이 급등해 가계에 큰 부담을 준다는 뉴스 역시 고민 없이 만들어낸 언론의 산물이다. 많은 언론들은 배추·무 등 채소가격이 크게 올라 김장을 하는 가구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 것이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금배추’ ‘금치’라는 표현도 서슴없이 했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4인가족의 김장비용은 지난해보다 8.7% 상승한 28만6000원 정도다. 김장채소의 작황부진에 따른 가격 상승분을 감안해 산출한 것이다. 김장비용이 늘었다 치자. 그래도 올 1인당 김장비용을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7만1500원에 불과하다. 김장김치 먹는 기간을 3개월로 친다면 1명이 한달에 2만3833원, 하루에 794원꼴이다. 언론은 하루 세끼 반찬으로 먹을 김장비용이 1000원 하는 껌 한통 값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대다수 언론은 올해도 농업인의 날이자 가래떡데이인 11월11일을 특정 기업의 과자 이름을 그대로 딴 ‘빼빼로데이’라고 홍보하는 데 열을 올렸다. 일부 언론은 한발 더 나가 그럴싸한 얘기로 포장해 빼빼로데이의 역사적 기원이 있다는 식의 ‘친절함’까지 베풀었다.

두눈 부릅뜨고 냉정하게 뉴스를 뜯어보자. 그러면 농민이 슬픔에 빠져 피눈물을 흘려도 나 몰라라 하고 책임없이 쏟아놓는 언론의 촉새 같은 뉴스가 보일 것이다. 안톤 슈나크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더라면 이런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후속으로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새로운 글을 통해 촉새 같은 언론에게 뼈아픈 ‘한방’을 날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광동 (농민신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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