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우순풍조(雨順風調) 대비 위원회를 꾸리자

입력 : 2019-08-21 00:00 수정 : 2019-08-22 09:25


우순풍조(雨順風調)는 ‘비가 순리대로 오고 바람이 고르게 분다’는 뜻으로, 중국어 펑티아오위순(풍조우순·風調雨順)이 우리나라로 건너오며 단어의 앞뒤 위치가 바뀐 말이다. 이 말은 중국 고대 주(周)나라 강태공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육도(六韜)>의 “기이극은 풍조우순(旣而克殷 風調雨順)”이란 구절에서 유래했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이기니 풍조우순했다’는 뜻이다. 이후 후진(後晋)의 역사가 유후(劉후)도 <구당서(舊唐書)>를 지으며 이 말을 인용해 “정관의 치(貞觀之治·당 태종이 나라를 다스린 태평성대의 시기) 이래 22년간 풍조우순하고 해를 이어 풍년이 들었다(自貞觀以來 二十二年載 風調雨順 年登歲稔)”고 표현했다.

우순풍조와 비슷한 말로 ‘때맞춰 내리는 단비’라는 뜻인 시우(時雨)도 있다. <맹자> ‘진심장구상(盡心章句上)’ 편에 나오는 말로, “군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에는 다섯가지가 있으니, 때맞춰 비가 내리듯이 가르쳐야 하고(君子之所以敎者五 有如時雨化之者)”라고 하여, 농사에서 시기적절하게 내리는 비가 중요하듯 제자 교육도 제때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이처럼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작물이 자라는 데 가장 좋은 조건, 즉 비와 바람이 적당해 작물의 생장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이상적인 자연 상태를 우순풍조나 시우라고 했으며, 이는 곧 태평성대나 임금의 치세로 의미가 확장되기도 했다. 백성들의 곳간이 그득그득 차니 임금은 큰 힘 들이지 않고 박수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 우순풍조와 시우가 말썽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이렇게 바뀌나 싶게, 시장경제의 발달로 수요·공급간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며 우순풍조 덕분이라는 만세소리가 아니라 우순풍조 탓에 ‘폭망’했다는 아우성이 농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날이 좋아 풍년 든 게 농가들에겐 값 폭락이라는 큰 상처를 안기니, 날씨 좋도록 도와준 하늘을 향해 “제발 좀 도와주지 마십사” 하고 빌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우순풍조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전체적으로 기상이 무난했던 올해만 봐도 그렇다. 양파·마늘은 지난해보다 재배면적이 줄었지만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생산량이 좋다보니 여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산지의 시름이 깊다. 올초부터 좀체 긴 바닥세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엽근채류값은 고랭지채소 수확기에 이어 가을 김장채소철까지 반등이 어려울 전망이다. 과수·과채도 특정 지역에 생산이 한정된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값이 하락해 농민들이 재미를 보지 못했다.

물량이 조금만 넘쳐도 값이 크게 내리는, 농산물이 가진 수요·공급의 비탄력성을 십분 인정하고 여기에 대응할 준비도 하고 있다고 치자. 하지만 엎질러진 물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 자연의 힘을 이길 수 없기에, 이미 기상호조가 이어져 적정선을 넘어선 상황에서는 산지폐기나 시장격리 등 그 어떠한 대책을 내놔도 미봉책이나 고육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번 “정부는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는 농민단체나 언론의 질타가 이어지지만, 우주의 기운이 잘 맞아떨어져서 대풍이 드는 데는 솔직히 농정당국이라고 해서 똑 부러진 특효약이 있을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우순풍조나 시우는 죄가 없고, 고약스럽긴 하지만 또 때때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비가 순리대로 오고 바람이 고르게 불기 전에, 때맞춰 단비가 내리기 전에 다가올 상황을 미리 조율할 방책은 없을까. 농업계뿐 아니라 기상전문가·우주과학자·천문학자까지 참여해 우순풍조에 대비한다면 나라도 편하고 농민들도 ‘풍년의 역설’로 우는 일이 없지 않을까.

농사는 하느님과 동업하는 일이라는데, 아무튼 요즘 하느님께 미안할 따름이다. 잘되게 해줘도 이리 아우성이니.

이승환 (농민신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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