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호미의 재발견

입력 : 2019-04-29 00:00


이달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와 묘역이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한 사찰에서 ‘호미 든 관음상’ 봉안 60주년 봉축법회가 열렸다. 호미 든 관음상은 마을 뒤 봉화산 꼭대기에 오른손으로 ‘호미’를 잡고 서 있는 관음보살 석상(石像)을 말한다. 관세음보살로 더 익숙한 관음보살은 세상의 소리(世音)를 마음의 눈으로 살펴 중생들의 고통과 번뇌를 보듬어주는 보살로 유명하다. 범어로는 ‘아바로키테슈바라’, <반야심경> 첫머리를 장식하는 ‘관자재보살’이 바로 관음보살이다. 그런 그가 왜 버드나무 가지나 연꽃이 아닌 호미를 들고 서 있을까.

6·25 한국전쟁의 포성은 멎었지만 모두가 절대빈곤과 기아에 허덕였던 1959년 4월. 당시 불교의 혁신을 꿈꾸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학승들이 흙과 함께하는 수행 원력의 하나로 호미를 든 관음상을 만들어 봉화산에 세웠다. 호미가 농업노동의 상징물이라는 이유에서다. 봉화산 관음상이 말해주듯 호미는 자연이 주는 대로 ‘채집’이 아닌 내게 필요한 ‘재배’를 선택한 농민들에게 오랜 세월 생존을 위한 도구이자 고단한 그들의 삶을 대변하는 농기구였다.

뜻으로 말하는 한자(漢字)는 호미를 ‘도움(助)을 주는 쇠꼬챙이(金)’라는 의미로 ‘서(鋤)’라고 표기한다. <설문(說文)>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서(鋤)’는 김을 매는 자루가 긴 도구인데 모습은 학의 머리와 목을 닮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괭이처럼 자루가 긴 중국 호미와 달리 자루가 짧아 좀더 정밀하게 제초작업을 할 수 있는 우리 호미를 ‘동서(東鋤)’라고 구분했다. 서호수 역시 <해동농서>에서 “호미는 서서 일하는 중국과 달리 우리는 앉아서 풀을 매기 때문에 자루가 짧다”고 기록했다.

호미는 북방 기마 유목민들이 몬순기후대인 한반도에 정착해 밭 갈고 씨 뿌리는 경종농업을 생업으로 선택하면서 개발한 독창적인 농기구다. 몇년 전 경북 경주 안압지 발굴조사 때 통일신라시대의 중요한 유물 가운데 하나로 호미가 나오면서 그 오랜 인연을 입증했다. 크게 논호미와 밭호미로 나뉘는 호미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지형과 용도에 따라 활용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됐고, 이름 역시 호매·흐미·호매이·호맹이·호마니 등 십여가지로 불린다.

조선 세종 때 편찬된 <농사직설>은 ‘호미는 풀매기 힘을 덜어주고 소출은 배가시킨다’며 그 이유로 농작물을 곧추세우거나 수분유지를 돕는 북돋우기와 풀매기를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이처럼 옛 농서(農書)들은 하나같이 호미의 유용성을 예찬하고 있지만 그 호미로 논밭을 매야 하는 농민의 입장에서 호미는 고된 노동의 대명사였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신(李紳)은 <민농(憫農)>에서 ‘호미로 논을 매다 한낮이면(鋤禾日當午), 땀방울이 벼포기를 적시고(汗滴禾下土), 뉘 알리 밥상의 저녁밥이(誰知盤中 , 알알이 농민의 피땀이라는 것을(粒粒皆辛苦)’이라며 호미질의 고단함을 그려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중 무렵 세벌 김매기가 끝나면 농민들은 호미를 씻는 ‘호미씻이’ 놀이를 통해 호미질의 애환을 달랬다.

녹색혁명과 함께 농업기계화가 이뤄지면서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던 호미가 요즘 해외에서 또 다른 한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경북 영주의 한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가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에서 원예용 농기구로 각광받고 있다는 것이다. 당당히 ‘호미(Homi)’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모종삽밖에 모르던 서양인들은 호미의 단단하고 야무진 모양과 쓰임새에 열광한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귀농·귀촌이 늘고, 치유농업과 주말농장 등 도시농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호미질과 호미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충남의 한 귀농학교는 오래전부터 수료식 때 학생들에게 수료증과 함께 호미를 농민의 증표로 나눠주고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AI) 스마트팜이 화두인 시대에 호미의 재발견을 반기면서 호미 열풍이 잊혀가는 우리 농업과 농촌의 가치로까지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한형수 (농민신문 취재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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