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소통과 ‘쇼통’

입력 : 2022-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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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낙농제도 개편안에 대해 일선 현장의 오해가 깊다.”

최근 열린 낙농진흥회 이사회.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우려를 표하는 생산자 측을 향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오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시행한다 해도 낙농가들이 걱정하는 소득 감소나 쿼터 감축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데 괜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게 요지였다.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낙농가와 직접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거듭 밝혔다.

그런데 낙농가들은 지속적으로 정부안을 규탄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폭염 속에 농민들이 모여 투쟁을 벌이는 게 정말로 이들이 정부의 진심을 오해한 탓일까? 소통의 장이 조성된다면 농민을 성나게 한 오해가 곧바로 상호 이해로 탈바꿈할까? 문제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용도별 차등가격제 적용 물량이 향후 어떻게 조정될지가 불확실하니 낙농가는 이를 희생 강요로 해석해 반발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정상가격에 거래되는 음용유를 195만t으로 설정했지만 이는 제도 개편 첫해의 구입물량일 뿐이다. 만일 우유 수요가 더욱 감소해 음용유·가공유 용도별 물량이 이후 큰폭으로 조정된다면 이는 농가소득 감소와 실질적 쿼터 감축으로 직결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유가공업체를 상대로 낙농가가 얼마나 대등한 협상을 벌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농식품부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 첫해엔 농가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반쪽짜리 설명을 되풀이하고 있다.

“우유 소비가 침체해 유업체들은 잉여유로 발생한 손실을 단백질 보충제, 식물성 음료 등 신사업으로 메울 것이다. 사업을 다각화하지 못한 작은 유업체들은 도산할 것이고 이는 소속 낙농가 폐업으로 이어질 것이다. 살아남은 적은 수의 농가와 유업체가 비싼 가격을 감수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우유를 공급하는 형태로 산업이 재편될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일부 낙농가와 유업체의 공멸’이라는 음울한 예언을 내놨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낙농업에 대해서는 안팎으로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낙농가와 유업계 모두가 절박한 처지다. 결국 정부가 낙농제도 중장기 발전방안 모색에 나섰지만 해당 안은 일년간 공전하고 있다.

묘수보다 묵직한 정공법을 택할 때다. 정부는 보여주기식 ‘쇼통’으로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제도 도입으로 농가별 쿼터와 유대가 어떻게 변할지 등 본질적인 사안들에 대한 밀도 높은 소통을 바탕으로 낙농가와 합의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규희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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