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쑥쑥 자라는 모를 보고 있으면…

입력 : 2022-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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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한 가뭄에도 별 탈 없이 저렇게 무럭무럭 자라는 놈들을 보면 뿌듯해야 하는데 외려 가슴만 답답합니다.”

전남 보성의 한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 관계자가 최근 한숨처럼 내뱉은 말이다.

모내기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요즘, 농도 전남 들녘은 초록색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농협 관계자들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2차에 걸친 쌀 시장격리에도 지난해 수확한 쌀이 여전히 농협 창고마다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협들은 최근 2차 ‘창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가을 쌀 매입량이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창고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육묘장이든 하우스든 지붕만 있으면 어디든 쌀을 보관해야 했고 그도 모자라 야적까지 감행하는 등 창고 확보 전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최근 보리 수매가 시작되면서 다시 창고가 필요해졌지만 쌀 재고가 여전히 많아 농협들이 또 창고 확보에 나선 것이다.

야적을 하는가 하면 창고를 차지한 쌀을 꺼내 옮기는 농협도 있었다. 해남에 있는 한 농협은 낡고 못 쓰게 돼 오래 방치했던 창고를 임시방편으로 수리하기까지 했다. 전쟁이라는 말이 결코 과하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문제는 2022년산 쌀 수확이 불과 두달 후면 시작될 것이라는 점이다. 두달 안에 창고를 비워야 올해 매입을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같아서는 반도 못 비울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재고가 워낙 많은 데다 소비둔화까지 겹쳐 쌀이 줄어드는 속도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전남농협지역본부에 따르면 전남지역 쌀 재고량은 4월말 기준 20만500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9만t의 2.3배에 이른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산지 쌀값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말 기준 산지 쌀값은 정곡 20㎏ 한포대에 4만6190원으로 지난해 10월초 5만6800원대였던 것에 비해 1만원 이상 낮다.

더구나 두차례 시장격리에도 지난해 10월말 이후 현재까지 7개월이 지나도록 쌀값은 단 한차례 반등도 없었다. 올해산 쌀값에 대한 전망이 비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나마 정부가 최대한 빨리 15만t 추가 격리를 시행해 쌀값 하락이 멈추기를 바라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올해 쌀 매입 가격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창고가 없으니 매입을 시작할 수나 있을지, 이제 겨우 모내기를 끝낸 들판에 선 농협 관계자들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이상희 (전국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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