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바보야! 문제는 가격이야

입력 : 2022-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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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가 당시 여당인 공화당 후보이자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을 향해 던진 선거 구호다. 당시 공화당 행정부는 구소련 등 공산 진영과의 냉전에서 거둔 승리를 정권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웠다. 이에 민주당 캠프는 경제를 화두로 앞세워 선거운동을 벌였고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최근 인력난과 자재비 상승에 대한 고추농가의 부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농가들이 한결같이 얘기한 것은 ‘가격’이었다. 마치 빌 클린턴 후보의 선거 구호처럼 말이다. 높은 품삯을 주고도 사람 구하기가 어렵고 모종·농약·비료 등 모든 비용이 상승해 부담이 늘었음에도 농민들에게는 가격 걱정이 제일 컸다.

실제로 서안동농협 고추공판장의 4월 평균 건고추 시세는 화건 상품 600g(1근)에 7011원으로 지난해(1만396원) 대비 32.5%나 떨어졌고, 평년(7987원)에 견줘도 12.2%나 하락했다. 이렇다보니 “8월부터 시작되는 수확기 때도 예년 가격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수확을 포기하겠다”는 농민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가격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코로나19로 외식업계가 큰 타격을 받아 소비침체가 지속되고 2021년산 재고물량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4월말 기준 건고추 재고량은 1만3000t으로 전년 대비 77.6%, 평년 대비 39.2%나 많은 상황이다.

이처럼 줄어든 소비량과 산지물량 적체가 가격 상승을 가로막고 있어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가격이 회복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흙먼지 뒤집어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금 농민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물가관리 차원의 접근이 아닌 국내산 고추 생산기반 안정을 위해 가격 지지에 적극 나서달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심화된 인력난을 완화하고, 과잉생산된 건고추 재고물량에 대한 시의적절한 시장격리를 시행해 가격 폭락을 막아달라는 요구다. 또한 외국산 고춧가루류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 시장 교란을 막아주길 바라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감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식탁에 빼놓을 수 없는 양념채소인 고추를 생산하는 농가의 걱정을 ‘물가안정’ 명분 뒤에 숨어 모른 체하면 안된다. 고추는 정부가 채소가격안정제를 통해 수급조절과 농가 손실 보전에 나서는 주요 농산물인 만큼 적정 가격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의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김동욱 (전국사회부 차장) jk815@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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