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초가삼간 다 태우는 수급정책

입력 : 2022-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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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격이 널뛰는데 우리 죽고 나면 누가 고추농사를 짓겠습니까?”

얼마 전 취재차 충북 제천의 한 식당에서 만난 농민의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1만6528㎡(5000평) 규모 고추농사를 짓는 이 농민은 지난해 건고추값 폭락으로 큰 손해를 봤다고 한다. 뼈 빠지게 일하고 빚만 늘어나는 현실에 허탈했다는 그는 올해 재배면적을 고추농사 40년 만에 처음으로 70%나 줄이고 산불감시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비료·농약 등 자재값 폭등과 인건비 상승에 작년 같은 가격폭락까지 또 겪으면 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의 말대로 지난해 건고추는 재배면적 증가와 양호한 작황으로 생산량이 전년보다 30% 이상 늘어 가격이 600g당 7000원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고추생산자단체 회장은 지난해 건고추 5000t을 긴급 수매해줄 것을 정부에 줄기차게 요청했지만 실제 격리된 물량은 1000t 정도에 그쳤다고 하소연했다. 물가 안정을 핑계로 정부가 농민들의 간절한 요청을 끝내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정부의 소극적 대응에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에게 돌아가고 농민은 영농 의지를 잃는 악순환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최근 쌀 상황도 지난해 건고추와 판박이다. 2021년 쌀 생산량이 388만2000t으로 수요량(361만t)을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되자 농민들은 정부에 선제적 시장격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올들어서야 뒤늦게 시장격리에 들어갔고 그 방법도 최저가 낙찰 방식을 사용해 ‘쌀값 지지’라는 당초 정책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그 덕분(?)인지 쌀값은 연일 최저가를 갈아치우고, 농민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쌀농가들은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고 쌀값 하락을 일부러 유도하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면서 “정부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족이겠지만 빈대는 ‘물가’고 초가삼간은 ‘농촌’이다. 정부의 잘못된 농산물 수급정책이 힘들게 농촌을 지키는 농민들을 떠나게 해 농촌의 존립 자체를 흔들고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농촌은 날이 갈수록 비어가고 있다. 정부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에 재정 지원과 컨설팅 등 갖은 대책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청년농 육성을 위해서도 많은 돈을 들여 정책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농민의 소득안정엔 인색하다. 정부는 농산물 가격안정이 농촌을 지키는 최선의 대책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라도 초가를 지켜줄 정부의 정책적 전환을 기대한다.

황송민 (전국사회부 차장) hsm777@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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