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디지털금융의 그늘

입력 : 2022-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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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찾은 한 음식점. 길게 늘어선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어르신이 ‘키오스크(터치스크린 방식 무인단말기)’를 독차지하고선 터치화면과 눈싸움만 몇분째. 젊은이들의 얼굴은 탐탁지가 않다. 끝내 직원 한명이 달려와 어르신을 도와 결제창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어르신은 주문을 마치지 못했다. 현금결제가 불가한 키오스크였기 때문이다.

생활 필수 영역인 금융에서도 디지털 소외가 나타난다. 고령층은 현금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들이 갈 은행점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서다. 최근 2년 동안 문을 닫은 국내 은행 점포수는 615곳에 달한다. 2018년 23개, 2019년 57개, 2020년 304개, 2021년 311개로 감소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자녀가 보내주는 용돈을 찾거나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러 수시로 찾았던 은행이 이제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그야말로 ‘일’인 상황이 됐다.

은행 입장에선 ‘디지털화’를 핑계 삼아 실속 찾기 좋은 분위기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화, 핀테크의 혁신 금융 서비스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발맞추기 위해 디지털금융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점포를 줄이는 것이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행원들을 두느니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고 이를 사용하는 고객에게 우대금리를 주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디지털금융이 모두에게 편리하다는 발전적인 방향이지만 고령층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콘이나 화면 구성, 눈에 띄지 않는 글자 등이 고령층이 모바일뱅킹 앱을 사용했을 때 장애물이 된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을 정도다.

문제는 고령층에 대한 배려는 디지털 전환 속도에 비해 턱없이 느리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올 2월 ‘고령자 친화적 모바일 금융 앱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큰 글씨, 쉬운 사용자 환경, 고령자 상용 서비스 위주 구성 등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금융사들이 앱을 개발하도록 한다는 게 뼈대다. 하지만 이는 2020년 8월 금융당국이 앞서 발표했던 ‘고령 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년6개월이란 시간을 들여 만든 가이드라인이지만 진전은 없었다. 청년희망적금같이 청년을 위한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는 것과 비교하면 금융 소비자 모두를 보호해야 할 금융당국도 고령층이 우선순위가 아닌 셈이다.

현재의 금융환경 초석은 지금의 고령층이 만든 편리함이다. 디지털금융이란 빛이 만들어낸 그늘에 고령층의 ‘금융할 권리’가 가려져선 안된다. 금융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이유리 (정경부 기자) glas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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