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도심 팽창과 벼랑 끝 농민

입력 : 2022-04-11 00:00

농촌 들녘을 누비다보면 완연한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육묘장에서 모판을 나르거나 비닐하우스를 재정비하며 올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민의 모습은 날씨뉴스나 달력보다 더 확실한 계절 알림이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자연의 섭리 같은 영농철 일상에서 벗어나 논밭 대신 도심으로 향한 농민들이 있다. 정부가 공공개발 사업으로 농지를 수용하면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다.

경기 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 등 3기 신도시 개발지역 농민과 주민들은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평생 피땀 흘려 일군 집과 농토를 헐값에 강탈당하는 고통을 받고 있다”며 “수십년 농사짓고 살아온 내 땅을 하루아침에 빼앗고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상황이 과연 공정하냐”며 정부를 성토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는 전국의 100만 강제수용 원주민들의 눈물을 닦아달라”고 촉구했다.

이러한 농민들의 외침에 혹자는 토지 보상금으로 ‘벼락부자’가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실상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정부가 수용된 농지에 대해 보상을 해주지만 금액은 현실과 괴리돼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 개발지역 대부분은 수십년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 이런 탓에 해당 지역의 공시지가 자체가 매우 낮아 이를 기준으로 책정되는 토지 보상금은 적을 수밖에 없다.

세금도 문제다. 강제로 수용된 토지에 대한 보상금을 받는 데도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현금보상 땐 감면율이 10%에 불과하다. 농민들이 정부를 가리켜 칼만 안 든 날강도라고 비난하는 이유다.

인근에 새로운 농지를 구해 영농활동을 이어나가려고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변 땅은 이미 오를 대로 올라 보상금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농지 규모를 크게 줄이거나 이마저도 안되면 먼 지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강제 이주인 셈이다.

다른 지역에서 새 농지를 구해 농사짓는 농민은 그나마 양호한 사례다. 낯선 곳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대신 농사를 포기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농민에겐 평생 살아온 고향을 떠나기가 쉽지 않다. 취재차 만난 60대 후반인 한 농민도 새 농지를 구할 수 없어 아예 농사를 접겠다고 했다.

농민들이 농작업을 하느라 한창 바쁜 봄이다. 하지만 토지 수용 농민들에겐 일궈야 할 논밭이 더는 없다. 영농철 갈 곳 잃은 이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최문희 (전국사회부 차장) mooni@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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