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비료 없는 세상

입력 : 202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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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농작물의 생육기에 비료가 투입되지 않으니 작황이 눈에 띄게 부진해진다. 쌀과 마늘·양파 등 채소류의 가격이 급등한다. 사료작물 가격도 크게 올라 육류 가격이 치솟는다. 결국 농산물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며 식량안보가 흔들리게 된다. 상상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요소 수급 문제가 원활히 해결되지 않으면 조만간 우리 눈앞에 닥칠 현실이다.

요소비료는 영농의 필수재다. 특정 영양성분을 입자 형태로 묶어 농작물의 생장을 돕는다. 하지만 요소비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요소는 100% 수입에 의존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요소를 생산하는 공장은 단 한곳도 없다. 국내의 마지막 요소 생산공장이 2011년 문을 닫았다. 경제 논리 때문이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요소 가격이 국내산 요소보다 크게 낮아 경제성을 맞출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요소의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중국산 수입이 막히면 요소비료의 원활한 수급이 힘든 구조다. 중국이 지난달 중순 요소 수출을 중단하자 국내 산업계가 대혼란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동계작물 재배에 필요한 만큼의 요소를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내년 3월 영농철에 필요한 물량까지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중국의 요소 수출 중단이 지속돼 국내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면 상상이 끔찍한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경제 논리로만 접근했다 낭패를 본 사례는 다른 산업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부장’으로 일컬어지는 소재·부품·장비 분야가 대표적이다. 일본이 2019년 소부장 분야의 수출을 규제하자, 우리나라는 큰 혼란에 빠진 바 있다. 정부는 부랴부랴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며 3년간 소부장 분야에 연구개발비로 9241억원을 투자했다. 그 결과 가장 문제가 됐던 불화수소(에칭가스)의 대일의존도는 43.9%에서 13%로,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은 91.9%에서 85.2%로 낮아졌다.

요소비료에도 이러한 조치가 필요하다. 국내에도 최소한의 요소 생산기반이 유지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래야 ‘요소 대란’을 방지해 식량안보 위기를 막을 수 있다. 개별 기업에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인프라 구축에 정부가 나서고, 요소 생산에 뛰어드는 업체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식량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정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번 ‘요소 사태’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허점이 생긴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 식량안보는 말짱 도루묵이 되도록 방치해선 안될 분야다. 비료 없는 세상이 현실이 돼서는 안된다.

김서진 (산업부 기자) dazzl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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