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디지털로 전환되지 않을 권리

입력 : 2021-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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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은행·증권사·보험사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DT)’에 사활을 걸고 있다.

DT는 단순히 디지털금융 서비스 확장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다. 디지털을 서비스 이용기준으로 만들기 위해 회사 조직과 시스템을 디지털 체제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기존 은행서비스 이용표준이 소비자가 은행점포를 방문해 창구직원에게 예금 출금을 부탁하는 것이었다면, DT는 이 표준을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금융서비스 이용으로 바꾸는 것이다.

디지털로 전환되지 않은 고령층은 ‘벌금’ 같은 이용료를 내고 있다. 온라인에서 증권사 계좌를 트면 유망종목 주식 한주를 받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지점에서 가입하면 되레 계좌 카드 발급 비용을 내야 한다. ‘100% 수수료 면제’ ‘연회비 전액 환급’도 모두 디지털 세상의 이야기다. 대면으로 대출상품에 가입하면 비대면보다 최대 1%포인트나 높은 금리를 적용받는다. 적금 우대금리도 온라인으로 가입해야 적용받는다.

비싼 비용만 치르는 게 아니다. 고령층은 DT를 따라가지 못하는 ‘뒤처진 존재’로 간주된다. 스스로 앱을 통한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의 정책 초점도 고령층을 디지털 세상으로 끌어들이는 데 맞춰져 있다. 매년 고령자를 위한 디지털 금융교육을 신설하고, 고령자 전용 큰 글씨 앱을 개발하는 식이다.

하지만 고령층은 디지털로 전환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프라인에서는 ‘당당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80대도 앱 앞에서는 ‘바보’가 되지만, 금융사 창구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여전히 스스로 금융활동이 가능하다.

단순히 대면문화 선호만의 문제는 아니다. 디지털 세상 입장권을 갖지 못한 고령층도 상당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2020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 고령층 10명 중 3명(30.6%)만이 이용 가능한 PC를 가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스마트기기 보유율도 44.9%뿐이다. 또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70대 이상 10명 중 2명(19.2%)은 앱을 내려받을 수 없는 피처폰(스마트폰 이전 세대의 휴대전화 기종)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DT만을 시대의 흐름으로 간주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디지털이 젊은 세대에게 편리한 방식이듯, 디지털 밖 세상이 편리한 이들이 있다. 디지털에 강제로 전환되고 싶지 않은 이들이 설 땅도 필요하다.

정단비 (정경부 기자) welcomerai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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