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동일 기능 동일 규제’ 라는 허상

입력 : 2021-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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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혀버린 뉴스가 하나 있다. 바로 ‘신용협동조합법 및 신용협동조합법 시행령 개정안’ 문제다. 금융당국의 규제 차이 해소 방안 조치의 일환으로 농협·신협 등 상호금융업권에 유동성비율, 업종별 여신한도 등 각종 규제를 도입하는 게 뼈대다.

농업계에선 상호금융기관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은 획일적인 규제가 농촌 금융경색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농업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융위원회는 입법예고 절차 이후 법령 개정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논리는 ‘동일 기능, 동일 규제’다. 저축은행 등 다른 업권에 비해 상호금융업권의 건전성 규제가 느슨한 측면이 있어 차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기관이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이들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저축은행은 금융시장의 사채 해소를 목적으로 설립된 상법상 주식회사다. 자금조달 방식이 다양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단기 위주 고금리 대출 운용으로 유동성비율이 꽤 높은 편이다. 반면 상호금융기관은 지역단위 조합원 위주 사업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법인이다.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자본이 구성돼 있어 자본확대가 어려운 구조다. 정책 대출 같은 장기 대출이 많아 유동성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공익성이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상호금융기관은 신용사업으로 수익을 내면 조합원과 지역주민을 위한 복지증진 사업 등을 통해 이익을 다시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국민 후생증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다른 업권과 달리 공익성이 높다.

금융당국은 상호금융업권을 언제든 문제가 터질 수 있는 리스크가 산적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상호금융기관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등을 겪으면서도 금융자산 규모를 늘리며 성장을 이어왔다. 조합 부실 발생 땐 중앙회 지원으로 유동성 위기를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도 철저히 대비해왔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게 정의다. 일괄적인 규제 강화는 금융 소외계층인 농촌주민의 복지를 증진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호금융기관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농촌 주민과 조합원에 대한 금융지원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동일 기능 동일 규제란 허상에서 깨어날 때다.

함규원 (정경부 기자) o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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