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편의점에 맡긴 편의행정

입력 : 2021-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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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편의점 만능시대’의 도래. 편의점이 택배·금융·세탁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학교급식까지 넘보는 모양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 상반기 원격수업을 받는 서울지역 초·중·고등학생의 학교급식을 편의점업계에 맡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집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편의점에서 도시락·우유 등을 구입할 수 있는 10만원 상당의 모바일 포인트를 지급하는 ‘희망급식 바우처’ 지원사업을 통해서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편의점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강조했다.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은 원격수업을 받는 동안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지 못해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업을 통해 결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편의성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편의점 식품이 아닌 우리농산물을 활용해 만든 도시락을 배달하는 방법도 있고, 생활협동조합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을 구매하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청소년기에 접하는 먹거리가 식습관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편의점을 많이 이용하는 학생일수록 학교급식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 식품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코로나19가 종식돼 학교로 돌아간 후에도 학교급식보다는 편의점 식품을 더 찾을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간편식이 발달한 시대에 ‘편의점 음식으로 무슨 끼니를 때우냐?’는 핀잔이 아무리 옛말이 됐다 해도 취재를 하면서 접한 학부모들의 편의점 식품에 대한 불신은 여전했다. 원격수업에도 자녀들의 식사를 챙길 여력이 있는 가정에선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포인트로 간편식보다는 과일 등 건강한 식품을 구매했다. 결국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학생들만 한끼 식사를 편의점 간편식으로 때우게 된 셈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어렵고 번거로운 방안 대신 쉽고 간편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학생들의 편의성을 이유로 댔지만, 이 사업을 통해 누구보다 편의를 누리는 건 행정기관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10년 동안 친환경 무상급식을 통해 알린 먹거리교육과 지역농산물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 같아 아쉬움이 더 크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사업의 안정적인 진행을 위해 만족도 조사연구도 병행한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단순한 만족도 조사에만 그쳐선 안된다. 학교급식의 교육적 효과와 지역사회에 가져왔던 사회경제적 효과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까지 지켜온 학교급식의 가치를 살리는 대안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오은정 (정경부 기자) onjung@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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