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형 산불 막아낸 협업의 가치

입력 : 2021-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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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주재기자로 일한 지도 2년 반. 4월만 되면 괜스레 불안해지고 일이 손에 잘 안 잡히는 증세가 생겼다. 날짜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2019년 4월4일, 동해안 일대를 덮친 대형 산불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당시 기자는 일주일 넘게 고성과 속초를 전전하며 화마의 현장을 수없이 맞닥뜨렸다. 가는 곳마다 벌거숭이가 된 산, 검게 그을린 가재도구들을 목도했다. 이재민들의 절절한 사연을 듣다보면 밥때를 놓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잔인한 4월을 겪고 나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간밤에 불난 곳은 없는지 먼저 살피는 ‘산불 공포증’이 생겨났다.

하늘도 무심하게 지난해에도 5월 첫날 고성에서 산불이 났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은 산림 85㏊를 태우고 진화됐다. 이재민들은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되니 정말 못 살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들의 하염없는 눈물을 보며 기자는 또 한번의 무력감을 느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돌아왔고 기자는 다시 ‘초예민’ 상태가 됐다. 아니나 다를까. 양양군 사천리, 삼척시 서하리 일대 임야가 화염에 뒤덮였다. 다행히 불길은 큰 피해 없이 잡혔다. 최근 집계된 자료에 의하면 올봄 영동지역의 산불 피해 규모는 11.22㏊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4.91㏊에 비해 약 91% 감소했다. 이로써 2017년부터 매년 도내에서 연례행사처럼 발생해온 대형 산불은 5년 만에 자취를 감췄다.

이를 두고 동해안산불방지센터의 숨은 노력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센터는 도와 동해안지역 6개 시·군, 산림청·기상청 등이 인력을 파견해 설립한 전국 최초의 산불 전문 협업조직이다. 일원화된 현장 지휘로 재난 대비 컨트롤타워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마련됐다. 또 센터는 국방부·국립공원공단을 비롯한 12개 기관과 무단입산자 집중 단속을 함께 펼치는 등 긴밀한 공조체계 유지에도 공들였다. 결과는 수치로 입증됐다. 2019년 고성 산불 땐 신고 접수부터 산불현장지휘본부 설치·운영까지 76분이 걸린 데 비해 지난해 고성 산불 땐 43분이 소요되는 등 초기 대응시간이 현격히 줄었다. 협업의 가치가 빛난 대목이다.

이밖에도 센터는 강원지방기상청·국립기상과학원 등과 협력해 산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양간지풍(襄杆之風·양양과 간성(고성) 사이에 부는 강풍)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내년 5월 고성 일대에선 세계산림엑스포가 개최된다. 만약 산림엑스포 전에 산불이라도 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더욱 고도화한 협력체계 구축으로 소중한 산림을 지켜내야 한다. 산불 앞엔 너와 내가 따로 없다.

김윤호 (전국사회부 기자) fact@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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