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4일천하’로 끝난 양배추농가의 꿈

입력 : 2021-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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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다가 낯익은 풍경에 눈길이 붙박였다. 제주 양배추밭이었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 곽도원씨가 허리까지 자란 양배추꽃 사이를 누비며 양배추를 골라 담고 있었다. 샛노란 양배추꽃이 흐드러진 모습을 본 스튜디오 출연자들은 연신 감탄했다. 하지만 가격 폭락으로 수확조차 못한 양배추가 자아낸 광경이라는 설명에 이내 겸연쩍은 웃음을 보였다.

올해 제주산 겨울양배추는 힘겨운 봄을 지냈다. 생산량은 9만여t으로 지난해보다 15.4%나 증가했고, 가을 가뭄으로 생육이 늦어져 전남 무안 등지와 출하시기가 겹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단체급식소와 식당 등의 소비도 급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올 1월 한망(3개들이·8㎏)당 7762원이었던 서울 가락시장 평균 도매가격은 3월 들어 3200원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이에 제주특별자치도와 농협·생산자단체는 머리를 맞댄 끝에 새로운 시장격리 방법을 시도했다.

기존 시장격리가 밭째 갈아엎는 것이었다면, 새 방안은 일단 수확을 마친 후 42망(폭이 42㎝인 망)보다 큰 양배추를 시장과 격리하는 것이다. 도와 농협, 그리고 생산자단체는 이로써 두가지 효과를 노렸다. 첫째, 대과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양배추를 출하해 물량 회전에 속도를 내고자 했다. 둘째는 한정된 인력을 시장격리 작업에 투입해 얻는 효과다. 양배추를 망에 넣는 작업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해 가용 인력이 제한돼 있다. 숙련자들이 격리작업에 투입되면 다른 밭에서 작업을 못해 그만큼 시장에 출하되는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3월18일 대책 시행 후 시장에 반입된 하루 평균 물량은 340t에서 210t으로 약 38% 감소했다. 20일 3683원이었던 가격은 22일 6163원, 23일엔 8426원으로 이어지다가, 24일 6389원, 25일 5002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6일 3943원으로 떨어지더니 줄곧 3000원대 후반과 4000원대 초반을 오르내렸다. 현장에선 ‘4일천하(四日天下)’라고 불렀다. 제주농협 관계자는 “가격이 회복되는 틈을 타 일부 유통상인들이 물량을 풀어 수급대책 효과가 지속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현장에서는 어차피 격리될 작물에 필요 이상의 인력과 시간이 투입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 물량 감축이 가격 회복으로 이어진 부분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수급 조절이 불가피하다면 관행보다는 이처럼 색다른 시도를 해볼 필요도 있다. 다만, 시장격리는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다.

심재웅 (전국사회부 기자) daebak@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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