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뒤끝이 개운치 않은 타이밍

입력 : 202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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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외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이다. 정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농업기계화 촉진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보면서 이같은 성현의 가르침이 불현듯 떠올랐다. 타이밍이 개운치 않아서다.

시행규칙의 개정 추진은 지난해 8월부터 본지가 지적했던 문제의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기는 하다.

본지는 지난해 8월 한 농기계업체의 제조연월 조작 지시 의혹을 보도한 이후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이 문제가 농민 소비자의 알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농산업계 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위협요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정부의 조사가 이뤄졌고, 업체는 제조연도 조작을 시인했다. 다만 처벌은 받지 않았다. 문제가 된 이앙기가 형식표지판 의무부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형식표지판에 거짓이 있더라도 행정처분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번 개정안에는 제조연월을 쉽게 위·변조하지 못하도록 제조번호 ‘차대 각인’ 규정이 삽입됐다. 4종에 불과했던 형식표지판 의무부착 대상 기종도 42종으로 확대됐다. 기존 제도보단 진일보한 안전장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입법예고 시기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해당 시행규칙 개정령안에 대한 ‘규제영향분석서’에는 작성 날짜가 1월12일, 입법예고일이 1월25일부터 3월8일로 명시돼 있다. 이 일정대로라면 이르면 3월 상순에 시행규칙 개정령안이 공포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입법예고가 이뤄진 건 3월16일, 입법예고 기간은 4월26일까지로 정해졌다. 개정안 부칙에 따라 제조번호 각인과 관련한 규정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갖기에 일러도 10월말께나 해당 규정이 적용되는 셈이다. 개정된 형식표지판 규정도 이때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당초부터 두달 가까이 입법예고가 늦어져 올해 국내의 농기계 판매 시즌이 모두 끝난 후에 시행규칙이 개정되는 셈이다.

물론 입법예고 전 추가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나 다른 요인들이 있어 당초 예정보다 입법예고가 미뤄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국회에서 여러 차례 관련 법안 발의가 이뤄졌고 농림축산식품부 내부에서도 지난해 11월부터 법령정비협의회를 통해 개정안 검토가 진행됐음을 고려하면 뭔가 석연치 않다. 업계의 편의를 고려해 입법예고 시점을 두달 가까이 미뤘다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농기계 제조연도에 대한 농민들의 알 권리는 다시 한시즌 유예됐다.


김다정 (산업부 기자) kimdj@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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