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급한 불은 껐지만…

입력 : 2021-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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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도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18일 기준 발생농장은 106곳으로 이달 1일 103곳보다 3곳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달말이면 주요 감염원인 겨울 철새가 대부분 우리나라를 떠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향후 AI가 추가로 나타나도 산발적 소규모 발생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농업현장을 다니다보면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급한 불을 끈 지금이 AI 대비책을 세우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이다.

방역당국은 지난겨울 AI 발생지 반경 3㎞ 이내에서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진행했다. 이로 인해 사라진 가금류는 약 3000만마리에 달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해외 연구자료와 과거 발생 양상 등을 면밀히 분석해 내린 과학적 조치였다”며 “강력한 살처분 정책을 펼친 덕분에 과거 같은 집단 발생 사례를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방역 측면에선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역대 최악이었던 2016∼2017년보다 이번이 야생조류 AI 검출 건수가 3배가량 많았음에도 발생농장수는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멀쩡한 가금류까지 예외 없이 살처분하면서 달걀수급 불안, 병아리수 부족 등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에 살처분 명령을 거부하는 농가가 나오는 등 농업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최근 정부가 한시적으로 살처분 범위를 1㎞로 완화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지난달에 키우던 닭을 모두 살처분한 한 농민은 “지금은 AI가 잠잠하니 범위 1㎞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다시 3㎞로 늘릴지 모른다”면서 “농가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규정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가금류농가의 주장은 발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살처분 범위와 방법을 조정하고 보상금도 시세에 맞게 현실화해달라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눈앞의 불을 끄느라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AI 방역의 주요 목적은 우리 가금류농가를 지켜내기 위함이다. 이제부터라도 농업계와 소통을 통해 개선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물론 감염 확산을 철저히 차단하면서 농가 요구까지 반영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당장 수개월 뒤면 또다시 겨울이 되고 철새도 날아들 것이다. AI는 또 발생할 수 있지만 정부 대처마저 변한 게 없어선 곤란하다.

김재욱 (산업부 차장) kjw89082@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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