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희망이 없다’는 절망

입력 : 2021-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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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트랙터를 빨리 잊는 것밖엔 방법이 없습니다.”

지난달 현장에서 만난 트랙터 도난 피해농민이 덤덤히 말했다. 그의 눈빛에선 트랙터를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범인에 대한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난 직후 명절 연휴가 낀 탓에 초동수사가 늦게 진행된 데다 주변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없어 단서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단다. 그는 CCTV가 설치된 인근 농장과 공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범인이 찍힌 화면을 구해 담당 경찰관에게 전달했다. 이웃들을 수소문하며 발품 팔아 얻은 단서도 제공했다. 하지만 최근 경찰로부터 ‘단서가 없어 수사를 종료한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이 농민은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처음부터 예상했다”고 씁쓸히 말했다. 농민에겐 트랙터가 전 재산이지만 수많은 절도범죄를 접하는 경찰관에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수사과정에서 어렴풋이 느꼈다는 것이다. 도난 사실을 애써 마음에 묻겠다고 말하는 농민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최근 들어 그처럼 희망 없는 눈빛의 농민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외국인 근로자 숙소 개선책을 취재하며 알게 된 화훼농가 역시 그랬다. 올초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 숙소로 가설건축물을 제공하는 농민에겐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현장의 반발로 9월1일까지 주거환경 개선 이행기간을 부여한다는 후속조치가 나왔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행기간이 주어진다는 보도가 나오기 전, 이 화훼농가는 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아내와 둘이서만 농사짓기 어려우니 농장 문을 닫고 다른 생계수단을 알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례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를 간신히 견디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정부의 방침이 농사에 대한 그의 마지막 의지마저 꺾이게 한 것이다.

이 농민은 “꽃 소비가 부진하고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처럼 농업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보니 이젠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농업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농민들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비단 단편적인 사건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간 정부 정책에서 홀대받은 경험이 켜켜이 쌓여 끝내 희망의 싹을 도려낸 것이다. 삶에서 희망이 없는 것만큼 절망적인 일은 없다. 농민들은 정부의 농업 홀대 기조 속에서 절망감을 느끼며 혹독한 추위와 싸우고 있다. 이들에게 희망이 움트는 계절, 봄은 언제쯤 찾아올까.

최문희 (전국사회부 차장) mooni@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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