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약해마저도 설명할 의무가 있다

입력 : 2020-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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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생이 확인된 과수 화상병은 전세계적으로 치료약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발병하면 과수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적방제를 시행하고 있을 정도다.

정부도 농가에 예방약제 살포를 적극 권장하는 등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문제는 예방약제 살포를 권장하면서 예방약제로 인한 약해(藥害)를 농가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농약상들도 특정 농약을 판매할 때 어떻게 뿌려야 하며 어떤 약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하는데, 영농지도기관들이 이를 소홀히 해 농가 피해가 커졌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온다.

얼마 전 충북 괴산군의 사과농가로부터 기자가 받은 문자 속엔 절박함이 묻어났다.

‘기자님, 문제가 심각하네요. 온전한 사과가 하나도 없어요. 약해로 갈변현상이 너무 심해 사과가 아니라 배가 됐어요. 이건 어떻게 해도 제값을 받을 수가 없겠습니다.’

해당 지역이 ‘화상병 관리구역’으로 지정되며 3회에 걸쳐 화상병 방제약제를 뿌렸는데, 추석 대목에 출하할 물량이 거의 없을 만큼 약해가 심각하다는 하소연이었다.

개화 전에 살포한 구리 성분의 약제가 화근이었다. 약제 속 구리 성분은 특정 습도와 만나면 과피가 갈변되며 거칠게 변하는 약해를 유발할 수 있다. 문자를 보낸 농가는 과원의 70%가 약해를 입었다.

안타까운 사정을 전한 농가의 농장을 둘러보니 약해가 발생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해당 과원은 “평소에도 안개가 많이 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습기가 많은 저지대의 골짜기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농촌진흥청도 구리 성분의 예방약제를 살포할 경우 약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농진청은 해외의 화상병 방제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습도가 높은 지역은 건조한 지역보다 약해가 발생할 확률이 높으므로 습하지 않을 때 구리제를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약해를 호소하는 상당수 농가는 영농지도기관에서 약해에 대한 주의사항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화상병이 무서운 병이고, 약을 뿌리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엄포’만 들었다는 농가가 많았다.

화상병이 두려운 병임은 분명하다. 적절한 치료제가 없으니 사전 예방 차원에서 농가에 위험성을 강조한 영농지도기관의 절박함도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약해를 제대로 경고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 약해를 최소화할 살포법을 제대로 고지하는 게 맞다. 화상병의 위험은 위험대로, 약해는 약해대로 알려주는 것이 영농지도기관의 의무다.

김서진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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