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과수 화상병 ‘팬데믹’일까 ‘엔데믹’일까

입력 : 2020-06-26 00:00 수정 : 2020-06-30 13:5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요즘 자주 언급되는 말이 ‘팬데믹’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대체하기로 한 이 말은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의 파괴력을 언급할 때 자주 사용된다. 국경이 봉쇄되고 교역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혼란이 바로 이 팬데믹에서 비롯됐다.

인류 역사상 팬데믹이 처음 일어난 것은 아니다. 14세기 흑사병이 팬데믹이었고, 19세기엔 콜레라가 있었다. 20세기초엔 스페인독감이 전세계를 휩쓸었으며 21세기에 들어선 신종플루와 같은 질병이 그랬다.

이같은 팬데믹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언젠가는 잠잠해진다는 것이다. 팬데믹의 종착지는 주기적으로 발생하거나 풍토병으로 고착화된 감염병인 ‘엔데믹’이다. 치료약이 나오거나 질병에 대한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면 발병에 대한 예상이 가능하고 발병지역이 좁은 엔데믹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전문가들이 내놓은 전망을 보면 코로나19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엔데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요즘 과수 화상병의 확산세를 보면 화살표 방향이 반대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적어도 국내의 화상병 발생 양상은 팬데믹에서 엔데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엔데믹에서 팬데믹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국내에서의 발병을 규모만 놓고 비유적으로 표현했을 때 그렇단 의미다.

그도 그럴것이 국내에선 이미 2000년대 초중반부터 화상병 유입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의심 신고를 하는 곳도, 쉬쉬하는 곳도 있었지만 2007년 이후부턴 의심 증상을 목격한 사례가 자주 나타났다. 현재 다발생지역으로 분류되는 경기 안성이나 충북 충주·제천, 충남 천안 등엔 이미 2005년을 전후해 화상병이 나타났을 것이란 게 정설로 자리 잡았다.

특정 지역에서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확인하고 바로 대처했더라면 피해 규모가 이렇게까지 확대됐을까. 이쯤 되면 우리 방역당국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 엔데믹을 팬데믹으로 키운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국내 첫 발생을 확인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했거나 검역·수출 등의 문제를 고려해 첫 발생을 인정한 시점이 늦어졌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좀더 꼼꼼히 방제 대책을 준비했어야 했다.

세상은 이제 BC(Before Corona·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한다. 팬데믹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화상병이 광범위하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팬데믹이 된다면 국내 과수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일대 전기가 될지도 모른다. 세심한 방역정책과 철저한 관리만이 화상병의 ‘팬데믹화’를 막는 길이다.

김다정 (농민신문 산업부 기자) kimdj@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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