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꽁꽁 언 농심 못 녹이는 ‘농작물재해보험’

입력 : 2020-05-25 00:00 수정 : 2020-06-30 13:55


요즘 ‘농사는 하늘이 돕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날씨 변덕이 유난히 심해서다. 올봄에는 낮 기온이 여름처럼 올라가다 밤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고 서리가 내리는 날도 잦았다. 실제 4월4~6일, 24~25일 두차례에 걸쳐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최저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 5월 초순에도 경북도 내 일부 시·군은 영하로 떨어지는 이상 한파(?)로 몸살을 앓았다.

이같은 갑작스러운 이상기온에 농작물이 배겨날 리 없다. 특히 꽃 피는 시기에 있던 배·사과·자두·복숭아·살구 나무의 피해가 컸다. 꽃이 수정하기도 전에 얼어 시들거나 떨어져버렸다. 밭작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릇파릇 자라던 감자 새싹은 영하의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거무스름하게 변하다가 말라 죽었다. 본밭에 옮겨 심은 고추는 뿌리가 내리기도 전에 저온과 서리 피해를 봐 많은 농가가 말라 죽은 고추를 뽑아내고 보식하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최근에는 2차 피해까지 나타나 농촌현장에선 농민들의 장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맘때면 무성하게 자랐어야 할 과수의 나뭇잎은 동전 500원짜리 크기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생육이 부진해 농민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사과 주산지인 경북 봉화·의성·청송 지역은 세차례나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결실이 크게 불량한 것은 물론 나무가 말라 죽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또한 배 주산지인 상주에서는 열매솎기할 게 없을 정도로 빈 가지가 수두룩하다. 간혹 달린 열매도 언피해를 봐 배꼽 부분이 불에 그슬린 것처럼 거뭇거뭇해 정상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경북 경산·영천 지역의 복숭아·자두도 열매솎기를 못할 만큼 결실률이 평년 수준을 훨씬 밑돌고 있다.

피해를 본 농민들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농작물재해보험도 미덥지가 않다. 과수의 경우 열매가 달려 있으면 일단 보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언피해를 본 과일은 비정형과가 될 확률이 높고 상품성이 떨어져 헐값에 처분할 수밖에 없지만 보험약관에선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나무가 시름시름 말라 죽는 경우다. 나무가 언피해로 죽어가고 있지만 맘대로 베지도 못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보험약관 때문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 보상받으려면 나무가 말라 죽은 사실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

한번의 자연재해에 1년 농사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농작물재해보험이다. 하지만 피해를 본 농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농작물재해보험의 존재 가치는 의심받게 된다.

농민들이 좀더 안심하고 영농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연재해 대비책과 농작물재해보험 등을 이번 기회에 손질해야 한다. 올봄 이상기후는 더 늦기 전에 제도를 개선하라는 계시를 준 셈이다.

오현식 (농민신문 전국사회부 선임기자) hyun2001@nongmin.com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추천광고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