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농사에 지름길은 없다

입력 : 2020-05-15 00:00 수정 : 2020-06-30 13:56


근절이 힘들다는 고추 탄저병을 ‘한방에’ 잡았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 ‘말도 안돼’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극적인 제목과 높은 조회수에 나도 모르게 클릭을 하게 된다. 영상 속 유튜버는 락스가 가성소다 성분이라 인체에도 유해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어 락스를 딱 한번 관주해 4일 만에 고추 탄저병을 치료했다며 시든 데 없이 깨끗한 고추를 보여준다. 고추냉이·소금·소주로 병충해 방제가 가능하고 토양에 영양까지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튜버도 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주방에서 당장 가져올 수 있는 것들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유튜브 속 ‘새로운 농법’들은 농민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청산유수 유튜버와 그를 추종하는 댓글을 보면 ‘초보 농부는 100% 믿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일견 쉽고 무해해 보이는 이 영농법들이 작물을 죽이거나 더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처방이기 때문이다.

실제 영상을 본 전문가들은 논리의 조악함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 전문가는 “락스를 뿌리면 작물도 죽는 만큼 병에 걸린 동물에 살균제를 먹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개탄했다.

놀라운 점은 이런 농법을 따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데 있다. 영상 조회수가 수십만에 이르고, 구독자수는 수만명, 댓글은 수백개에 달한다.

검증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쉽고 편해 보이는 유튜브 속 영농법을 따라 했다가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농민이다. 실제 댓글을 보면 이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오히려 고추 탄저병이 더 퍼지거나 작물이 죽었다는 사례가 많다. 설령 작물이 괜찮다 하더라도 ‘락스 고추’인 줄 알면 소비자가 구매하겠는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유해한’ 병해충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는 농민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그러나 이토록 쉽고 유익한 방법을 왜 모든 농가에서 쓰지 않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무조건 농약을 사용하라는 것도 아니다. 유기농법처럼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건강하게 농사지을 수도 있다. 단,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방법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농촌진흥청과 각 도 농업기술원, 시·군 농업기술센터도 유튜브를 통해 영농기술을 알기 쉽게 알려준다. 문제가 되는 영상들처럼 ‘한방에’ 병해충을 잡을 수는 없지만 ‘한번에’ 농사를 망치지는 않을 검증된 영농기술을 전달한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농사의 기본은 정성과 노력이라는 의미다. 노력 없이 한방에 농사지을 수 있는 왕도나 지름길은 없다. 왕도가 없는 길에서는 정도를 가는 게 최선이다.

김서진 (농민신문 산업부 기자) dazzl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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