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남의 집 잔치’가 되지 않으려면

입력 : 2020-05-04 00:00 수정 : 2020-06-30 13:56


“그러믄 직불금을 못 받소?”

4월 어느 날, 지긋한 어르신이 전화를 걸어왔다. 충남 천안의 농촌마을 이장이라고 했다. 한창 바쁜 농번기에 서울까지 전화를 한 이유는 ‘공익직불제’였다. 

사연은 이러했다. 마을에 농사짓는 땅이 0.5㏊도 안되는 노인이 여럿이다. 대부분 형편이 여의치 않다. 그런데 이제 나라에서 공익직불제라는 걸 한단다. 소농직불금을 매년 120만원씩 준다는 것이다. 이웃들 생활 좀 나아지라고, 이장은 소규모 농가들의 직불금 신청을 독려했다. 그런데 면사무소에 갔더니 모두 직불금을 받을 수 없단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한번도 직불금을 받은 적이 없는 농지라는 명목 때문이었다. 

“이게 참말이오? 공익직불제법이 그렇소?”

안타깝지만 실상 법이 그러하다.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은 직불금 지급대상을 신청 직전 3년 동안 1회 이상 직불금을 정당하게 지급받은 농지로 한정한다. 공익직불제 도입에 따라 법 일부가 개정됐지만 이같은 지급대상 기준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 사람들이라고 받기 싫어서 안 받았겠소? 수해에 땅이 떠내려가서 농사를 못 지은 이도 있고 노인네들이 잘 몰라서, 절차가 복잡해서 신청 못한 거지. 땅 주인이 (임대차계약서에) 도장을 안 찍어줘서 직불금 못 받은 사람도 숱해요.”

이장은 답답한 마음에 농림축산식품부에도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그러나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단다.

물론 정부도 지급대상 기준을 고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직불제 개편으로 대상 농지가 급증하거나 재정규모의 변동성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과거 직불금 수급실적을 잣대로 삼은 것이다. 이런 규정이 제도의 안정적 도입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직불금 대상에서 제외되는 소규모 농가 입장에선 억울함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공익직불제는 농업으로 공익 증진에 기여하는 농민들을 지원하는 제도다. 소농직불금은 그간 대농에게 치중됐던 직불금 구조를 뜯어고치기 위해 신설됐다. 이에 따라 소규모 농가의 직불금이 늘어났다지만 일부 소농은 과거 수급실적에 발이 묶여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런 사실조차 모르는 농가도 많다. 앞선 사례와 같은 문의를 여러번 받았지만 공익직불제 규정이 무엇인지, 왜 그런 규정이 생겼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농업계는 지급대상 기준뿐 아니라 논밭 비농업진흥지역 단가 차등, 재배면적 조정의무 부과 등 공익직불제의 지침을 줄곧 지적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5월1일 공익직불제가 첫발을 내디뎠다. 벌써부터 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그 때문이다.

정부는 중소규모 농가의 소득안정과 농업·농촌의 공익기능 강화를 위해 직불제를 개편한다고 강조해왔다. 목표 달성을 위해선 조금이라도 빨리 제도를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공익직불제에 소외된 농민들로부터 ‘남의 집 잔치’라는 오명을 얻지 않으려면 말이다.

하지혜 (농민신문 정경부 기자) hybrid@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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