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봄은 절망을 모르더라

입력 : 2020-04-22 00:00 수정 : 2020-06-30 13:56


‘봄은 절망을 모르더라.’

4월에 느끼는 단상이다. 매화와 벚꽃은 매년 그렇듯 자신의 유전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고혹적인 색과 향으로 곤충을 유혹한다. 농민들은 그림 속 주인공처럼 말없이 밭에 나가 김을 매고, 농기계는 날실 씨실 엮듯 부지런히 논밭을 오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먹구름이 농업계는 물론 국내 산업 전반을 집어삼킨 터였을까. 농촌 곳곳을 누비며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면서도 밝고 화사한 4월 풍광을 바라보노라니 난생처음 컬러텔레비전을 접한 듯한 생경함이 느껴졌다.

초·중·고등학교 급식이 중단되며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곳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전남 여수에서 친환경봄나물을 키운다는 한 농가는 “판로가 다 막혔어요. 속도 모르고 쑥쑥 자라기만 하는 봄나물을 베어내 버릴 때마다 내 살을 에는 것 같다니깐요”라며 고통스러워했다.

일반 농산물이라고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미나리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미나리가 한창 잘 팔려나갈 시기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가격이 엉망”이라면서 “공판장에 낼 수 없어 농협과 함께 직거래에 나서고 있지만 수요 절벽에 어려움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이 와중에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도 들렸다. 전남도가 전국 최초로 ‘농어민 공익수당’ 지급을 시작한 것이다. 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된 만큼 농민들에게 상하반기 통합분 60만원을 조기에 쥐여주겠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가장 먼저 지급을 시작한 장흥군의 한 마을을 가보니 농민의 웃음이 담장을 넘었다.

“참 오래 살고볼 일이여. 오랫동안 농촌에 살았다고, 농사지었다고 나라에서 상을 준다고 하니 좋제. 조만간 친구하고 맛있는 거 사 묵으러 마실 가야겄어.”

전남 남부지역에서는 울금·유자·생강 소비 증가세가 가파르다. 코로나19 때문에 면역력을 높이는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쏟아져서다. 진도농협이 판매하는 울금 가공품 매출액이 지난해와 견줘 50% 이상 증가했단다. 진도농협 관계자는 “위기가 곧 기회라는 생각으로 관광지를 돌며 방문객에게 울금 제품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흥은 때아닌 수출 특수로 ‘소리 없는 함성’을 지르고 있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바이어들이 고흥산 유자차와 생강차 등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덕분이다. 고흥군 경제유통과 관계자는 “고흥산 유자차가 향이 풍부하고 비타민C를 다량 함유했다는 소문이 돌며 외국 소비자의 이목을 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렇다. ‘포기’란 단어는 도무지 농민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갈수록 무르익고, 전염병 확산 우려에 오히려 우리농산물의 우수성이 국내외에서 부각되고 있지 않은가. 절망을 뒤로하는 봄이 성큼 왔으니 우리도 희망의 꽃을 피워 화답해야 할 때다.

이문수 (농민신문 전국사회부 차장) leemoonsoo@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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