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돈산업 중장기 비전이 안 보인다

입력 : 2020-04-10 00:00 수정 : 2020-06-30 13:57

“돼지고기값이 오랜만에 4200원을 넘었습니다.”

2월말 대한한돈협회를 방문했을 때 한 직원이 활짝 웃으며 기자를 반겼다. 돼지고기 경락값이 5개월 만에 협회가 추산한 생산비(4200원, 지육 1㎏ 기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3월3일 삼겹살데이를 앞두고 한돈자조금을 활용해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벌인 것이 주효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일부 사재기 수요가 발생한 점도 한몫했다.

돼지고기값은 삼겹살데이를 지나자마자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3월말엔 3000원대 초중반으로 내려앉았다. 협회와 자조금관리위원회는 급한 대로 뒷다리 3300t을 수매·비축했고, 소외계층 돼지고기 나눔행사(30억원어치)도 진행하며 수급안정에 나섰다. 그러자 돼지고기값은 최근 3000원대 중후반까지 회복됐다.

일련의 흐름을 보며 문득 기시감이 느껴졌다. 가격이 내려가면 할인행사를 통해 수요를 끌어올리거나 수매·비축을 통해 공급량을 조절하는 이런 패턴은 지난해에도, 그 이전에도 반복됐던 것이다. 대대적인 할인행사가 끝나면 한돈 소비는 침체되고, 수매·비축된 물량은 언젠가는 다시 시장에 나오게 된다.

농가와 생산자단체가 눈앞의 돼지고기값에 일희일비하며 임시방편식 대책 마련을 반복하는 동안 한돈산업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과제들은 외면받고 있다.

돼지고기 품질 개선이나 농가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부재한 것이 대표적이다. 돼지도체 1등급 이상 출현율은 수년간 64%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행 돼지도체 등급제가 마련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과 비교해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육가공업계에서는 “과거보다 돼지고기 품질이 더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어떻게 품질을 높일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가의 생산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MSY(어미돼지 한마리당 연간 새끼돼지 출하마릿수)도 10년째 18마리로 제자리걸음이다. 저돈가 시대에 MSY를 높일 수 있다면 농가의 경영부담을 덜 수 있다는 조언은 이미 수년 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협회나 자조금관리위원회가 MSY를 끌어올리기 위한 어떠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이미 많은 소비자는 “국산 돼지고기보다 풍미·품질이 높다”며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고기, 미국 냉장 돼지고기 등 다양한 수입 돼지고기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스페인 돼지고기 수입량은 5만6720t으로 매년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냉장’ 돼지고기의 국내 공세도 매년 거세지고 있다.

이제는 단기적 가격 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에 급급하기보다 근본적인 산업 발전을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설 때다.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수입 돼지고기의 공세가 더 거세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돼지고기 품질 및 양돈농가의 생산성 향상,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제품 개발 등 한돈산업 발전을 위한 노력에 모든 생산자들이 힘을 쏟아야 한다.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가야 할 주체는 협회와 자조금관리위원회다.

박하늘 (농민신문 산업부 기자) sky@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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