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빌려줄 때까지만 친절하면 그만인가

입력 : 2020-03-27 00:00


2월초, 경기 연천군농업기계임대사업소에서 수리비를 과하게 청구했다며 농민 이찬복씨가 기자를 찾아왔다. 당시 그는 임대농기계 수리비 지급을 요구하는 연천군과 법정 싸움을 하던 중이었다(본지 2020년 2월28일 14면 보도).

그가 법정에서 주로 문제를 삼은 건 불투명한 수리과정과 일부 농기계 부품의 부풀려진 단가였지만, 농기계 사고가 났을 때 임대사업소의 대응에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문제가 사고 당일 드러난 임대사업소의 허술한 비상연락체계였다. 2018년 7월 주말 이틀간 임대사업소 서부지소에서 트랙터를 빌린 그는 임차 첫날 트랙터가 전복되는 사고를 겪었다. 그런데 주말 내내 임대사업소와 제대로 된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농기계를 빌려줄 때 농기계가 훼손된 경우 임의로 수리하지 말 것을 강조하며 바로 연락 할 것을 당부하던 태도와는 딴판이었다는 것이다. 적절한 대처요령을 몰랐던 이씨는 결국 임의로 트랙터를 바로 세우고 시동을 걸어 트랙터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등 혼자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 농기계를 쓰도록 빌려주고 있다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농민이 임대사업소에 곧바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했다.

임대사업소간 원활하지 못한 정보교류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연천군은 농민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농업기계임대사업소를 연천본소와 서부지소 두곳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이씨는 사고 발생 직후 농기계를 빌린 서부지소와 연락이 닿지 않자 본소로 연락을 취해 사정을 얘기했다. 하지만 본소 직원은 그에게 “서부지소에서 대여한 농기계이니 서부지소로 연락하라”는 답만 줄 뿐이었다. 본소와 지소가 농기계 대여현황을 상호 교류하지 않고 있어, 이씨가 어떤 기종의 농기계를 빌렸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서부지소와는 사고가 발생한 주말이 지나고 나서야 연락이 닿았다.

임대사업소가 이씨에게 수리비를 청구하는 과정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발생했다. 처음 임대사업소가 이씨에게 보낸 공문에는 그가 지불해야 할 자부담금 280만원이 289만원으로 기재돼 있었다. 이 오류를 잡아내 정정을 요청한 사람은 바로 이씨였다. 그가 견적서를 자세히 뜯어보고 다시 계산을 하지 않았다면 내지 않아도 될 추가금액을 냈을 것이다. 게다가 정정된 자부담금에 대한 안내는 사과 한마디 없이 다시 공문 형태로 그에게 발송돼 왔다.

이번 사건은 농기계 수리비를 둘러싼 농민과 지자체간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임대농기계 사고 이후 발생한 임대사업소의 미숙한 대처도 한몫하고 있었다.

이씨는 얼마 전 연천군이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고 기자에게 알려왔다. 그는 지방자치단체가 농민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취하해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털어놨다.

이제 이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겠지만, 이번 사건이 남긴 과제들은 적지 않다. 좋은 취지로 운영되는 농기계임대사업소가 진정 농민들을 위한 사업이 되려면 임대 후 생기는 다양한 문제에 체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오은정 (농민신문 산업부 기자) onjung@nongmin.com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추천광고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