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로봇으로 사과 수확하는 미래를 그려야 한다

입력 : 2019-12-04 00:00

“앞으로 사과농사의 핵심은 ‘기계화’가 될 거예요. 기계화에 최적화된 수형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지난가을, 미래 사과수형으로 꼽히는 다축형을 사과농가들에게 공개하는 한 투어에 취재차 참가했을 때 들은 얘기다. 투어를 주관한 연구자가 농가들에게 새로운 수형을 소개하며 국내 과수농사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설파하면서 한 말이었다. 지금은 사과농사를 지을 때 수량만 잘 나오면 되지만, 앞으로는 노동력을 줄이는 기계화가 중요해진다는 맥락이다. 그가 소개한 다축형 역시 전정(가지치기)과 꽃솎기(적화)의 기계화가 가능해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수형이다.

본지에서 수차례 보도했던 다축형이나 2D형 등 주목받는 미래 수형은 구체적인 모양새는 달라도 노동력 절감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본지 창간 55주년 기획물인 ‘세계 선진농법 현장을 가다’ 취재차 만났던 이탈리아의 다축형 연구자는 “‘인건비는 갈수록 오를 수밖에 없다’는 엄중한 현실이 다축형을 미래 수형으로 부각시킨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선 이미 수형을 바꾸기 시작해, 기계화가 불가능할 것 같은 과수분야에서도 기계화를 이뤄내고 있다.

과수산업을 둘러싼 여건은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갈수록 농촌인력은 줄고 인건비는 느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생산비 상승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여전히 인력에 의존하는 수형을 고집하고 있다. 일부 선도농가가 1~2년 전부터 미래 수형을 자기 농장에서 소규모로 시도하고 있지만, 사실 미래 수형에 대한 개념조차 모르는 농가가 대다수다. 설사 의지가 있다손 치더라도 개인 농가 차원에서는 쉽사리 새로운 도전에 나서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우리 농업의 현실이다. 2D형을 도입한 한 사과농가는 “60~70대 이웃농가들이 신수형을 보고 이것저것 묻기는 해도 ‘현재의 방식을 바꾸기는 어렵겠다’며 돌아선다”고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난국에서는 정부가 미래 수형의 개발·보급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수밖에 없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경영주인 농가의 몫이지만, 국가의 근간인 농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당위성에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제8차 농업기계화 기본계획’을 보면 과수원의 인력절감을 위해 동력제초기·전동전지가위·고소작업차 등을 생력화 기계로 명명하고 농가에 보급한다는 구상이 있긴 하다. 하지만 다축형을 도입한 이탈리아에선 이미 전동전지가위나 고소작업차가 아니라 과원의 나무 사이를 이동하며 가지를 치는 전정기계와 과실을 따는 수확기계를 사용하고 있다.

농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녹록지 않지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농장단위에서 시도할 수 있는 변화가 있다면 농가들은 관행을 깨고 적극 나서야 한다. 관계당국과 연구기관 역시 농가들이 새로운 길을 걷는 데 헤매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오은정 (농민신문 산업부 기자) onjung@nongmin.com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추천광고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